🌏⛵️ 아이폰, 어쩌면 전기를 배급 받아 써야 한답니다

2022. 10. 11.

📧 비밀작전! 웹에서 편하게 읽어요~

📲 EU 소식입니다.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닙니다. 아이폰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전기도 배급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겨울입니다.가을은 강제 삭제 중

안녕하세요, 비밀요원님! 화요일의 티톡 🎱핑크쵸코가 인사드려요.

이틀 전 내린 비로 바람이 한층 더 쌀쌀해졌어요. 이번 달부터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이 인상됐다는 소식에 마음마저 움츠려들어요. 내 월급만 제 자리걸음, 생활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죠.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에요. 9월 초 기준, 천연가스 현물가격은 지난 1월 대비 2.3배, 석탄은 2.5배 가까이 상승했어요. 다만 한국은 LNG 물량의 상당 부분을 장기계약으로 도입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공급 불확실성이 낮지만 유럽은 사정이 다릅니다.

유럽국가는 에너지 공급 원천으로 천연가스에 23.7%를 의존하는데요. 이중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40%나 차지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에 경제재재가 가해졌고,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단계별로 줄이는 것으로 맞섰습니다.
때문에 유럽은 가격은 둘째치고 대체 공급처를 새롭게 찾아야 하는 과제마저 주어졌습니다.

🌍유럽에서의 에너지 위기는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닙니다.

유럽은 탄소중립선언의 일환으로 석탄화력발전량을 줄이고 빠른 속도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중인데요. 지난 해엔 바람이 적게 불어 풍력 발전이 기대만큼 전기를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천연가스로 눈을 돌렸지만 중국발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OPEC 국가들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수요가 급감했던 악몽 탓에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걸 주저했죠. 결국 남은 건 석탄 뿐, 유럽국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석탄화력을 재가동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흥미로운 건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진 않았습니다. 천연가스를 줄듯 말듯 애태울 때 오히려 유럽을 압박할 무기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9월 말이었습니다.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드스트림 1’ 파이프라인 세 곳이 파괴되며 대규모 가스누출이 일어났습니다. 조사 결과 복구 불가!

‘노드스트림 1’을 통해선 누구도 천연가스를 보내지도, 받지도 못합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더이상은 유럽에 위협을 가할 수 없게 된 거죠.

미국과 EU는 ‘노드스트림 1’ 폭파 범인으로 러시아를 지목하는데요. 러시아는 이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물론 일각에서는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가설이 제기됩니다. 러시아의 돈줄이자 유력한 협상카드를 자발적으로 없앨 요인이 낮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오리무중입니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습니다. (현지시각) 지난 9월 21일 러시아는 부분 동원령을 발표한데 이어,

📍10월 8일, 크름대교를 지나는 트럭 폭파

교량 일부가 무너지고 근처에 있던 러시아 유조열차로도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의 소행이라며 맹비난합니다.

📍10월 1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습

키이우 중심부에 러시아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키이우 중심부가 폭격 당한 건 전쟁 후 처음으로 에너지 시설 등 주요 인프라 공격이 목표였습니다.

↑ 키이우 중앙역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건물. 인근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충격 여파로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전쟁 발발 후 주재원들은 모두 폴란드로 떠났으며 현지 직원은 재택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 중요한 건 현재 유럽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5일 OPEC+는 11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당 20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생산되는 원유량이 2% 가량 줄어든다는 의미인데요. 글로벌 고강도 긴축 재정으로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고 유가도 하락할 조짐이 보이자 원유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내린 조치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속이 타 들어가는 미국에겐 안 좋은 소식, 에너지 안보로 위협 수위를 높여가는 러시아에겐 희소식입니다.

이런 에너지 위기 속에서 유럽 국가들은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수립합니다.

(공급 조정) 석탄과 원전으로의 회귀
(수요 조정) 전기배급 시대의 부활
(재분배) 횡재세를 걷겠습니다!

🙉 석탄과 원전으로의 회귀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겠다!

다만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는 게 당장엔 쉽지 않습니다. 석유는 앞서 말했듯 원유 생산국 등이 증산량을 늘리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남은 건 석탄 뿐, 지난 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된 겁니다.

EU는 영구적인 방침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탈석탄 기조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일 뿐,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더욱 빠르게 추진 중입니다.

특히 지난 5월 ‘리파워 EU(REPowerEU)’라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발표했는데요. 이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EU의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엔 55%로 추산됐지만
전쟁 이후 69%로 오히려 오르는 것으로 전망됩니다.

원자력도 중요한 대체재로 떠오릅니다. 델타 월딩에서도 소개한 바 있죠.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녹색분류체계(Taxonomy)에 포함시킨다는 기후위임법이 지난 7월 EU를 통과했습니다.

물론 과도기적 조치일 뿐이라며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택소노미로 분류됩니다. 핵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개발도 주요한 전제 조건입니다.

반대 여론도 만만찮습니다. 애당초 본 법안은 찬성 328표(51.3%), 반대 278표(43.5%), 기권 33표로 찬성이 압도적 우위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가 친원자력이라면 독일이 대표적인 반원전 국가입니다. 그린피스는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며 유럽사법재판소에서 법적 대응을 예고키도 했는데요.

본 조치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해 12월,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K-택소노미)엔 원자력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었습니다.

지난 7월 5일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2021년말 기준 27.4%였던 원자력 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밝혔습니다.
9월 20일에는 원자력 발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수정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K-택소노미의 관건은 원전 사업의 유럽 진출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기 위해선 수십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업비를 자력으로 조달할 수 없는 국가는 사업자가 함께 분담해 주길 바라는데요. 특히 폴란드는 49%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원전도 자력으로 총사업비를 마련하긴 어렵습니다. 유럽금융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K-택소노미가 EU-택소노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투자자들은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투자를 꺼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전 사업의 옳고 그름은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원전 사업의 유럽 진출이 목표라면 방산 수출 등과의 연계라는 전략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사업비 조달이 핵심인 만큼 올해 말 최종안을 확정짓는 K-택소노미가 EU 기준에 어느 만큼 부합할지를 지켜봐야 할 겁니다.

🪫전기배급 시대의 부활

화석・원자력 발전으로의 한시적 전환이 공급 부문의 조치라면 수요 조정도 필요합니다. 전력 사용을 강제로 줄이는 건데요.

그래서 지난 날 식량을 배급받던 것처럼 전기도 단전을 하거나 배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 (좌)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코로나 19 발발 후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선 차량들

(우) 1929년 경제대공황 발발 당시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 앞에 줄 선 사람들

제목처럼 아이폰 정확하게는 모바일 네트워크는 전력 우선공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현재 유럽에 설치된 대부분의 통신 안테나 백업 배터리 용량이 약 30분 정도에 불과하답니다.

즉, 단전이나 전기배급이 정말로 실시된다면 스마트폰이 먹통이 된다는 거죠.

현대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폰이 전기의 우선 공급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 비상사태 발발 시 119에 전화하기도 어렵고 낯선 지역에서 경로 검색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탄소중립선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 ICT라고 하죠. 2012년 기준 ICT 부문이 배출하는 탄소량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2%로 추산됐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ICT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비율이 2.1~3.9%로 추산됐는데요. 이는 항공산업에서 배출하는 2%보다 더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평가는 분분합니다.

ICT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생각보다 더 우려될 수준이라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ICT가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오히려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반박키도 합니다.

전자는 주로 학계, 후자는 에릭슨 등과 같은 모바일 업체의 연구 결과입니다. 입장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중요한 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도 탄소가 배출된다는 겁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철강・정유・자동차 등 제조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은 공정 방법을 개선하거나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직접 감축할 수 있지만
ICT는 기기 제조과정에서만이 아니라 ‘네트워크’ 그 자체로 인해 끝없이 전기 먹는 하마로 존재합니다. 통화 품질을 높이기 위해선 더 많은 장비를 설치・운영해야기 때문에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증가합니다.

즉, ICT는 장비 가동률을 낮추지 않는 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게 불가합니다. 그러나 장비 가동률을 낮추면 품질이 저하되고 소비자가 이탈합니다.

네이버・카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버 관리를 위해선 전기가 필요하고, 결국 탄소를 배출하는 거니까요.

한국은 전기배급과 같은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아직 낮습니다. 그러나 통신업체와 빅테크 기업 등은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8월 LG 유플러스 사장이 과기정통부장관을 만나 이렇게 말했답니다.

“통신업체를 탄소배출 무상 할당 대상으로 인정해달라.”

알다시피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한국은 기업들에게 탄소배출권을 할당합니다. 기업은 탄소배출량이 할당량보다 많을 땐 다른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이고, 적을 땐 되파는 방식으로 탄소배출량이 조정되는데요.

지난 2017년까지 한국정부는 탄소배출권을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할당했습니다. 그러나

2018~20년까지는 전체 배출권의 3%
2021~25년까지는 10%를 기업이 경매를 통해 구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ICT 기업 중 배출할당 대상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네이버 이렇게 네 곳입니다. 그리고 지난 해엔 SKT와 네이버만 탄소배출권을 약 10억 원을 들여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당장 8년 뒤인 2030년에 SKT가 지출해야 할 비용은 10억보다 200배나 많은 2천 억 원, 2050년엔 5천 억 원으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KT 역시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해 2025년엔 510억 원, 2030년엔 천억 원을 지출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LG유플러스도 내년부턴 탄소배출권 구매 행렬에 합류할 예정인데요.

KT와 LG유플러스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 네트워크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4~5%라고 합니다.

이때문만은 아닙니다만,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죠.

SKB는 넷플릭스의 연간 망 사용료가 1천 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법정은 1심에서 SKB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정산을 할 필요가 없다며 2심을 제기했습니다.

핵심은,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위해선 전기가 필요합니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됩니다. 그리고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합니다.

그동안 공공 인프라=무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했지만 어떤 재화든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를 두고 이전엔 없던 갈등이 빚어지는데요.

이것이 끝이 아닐 겁니다.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될 수록 비용 분담을 둘러싸고 우리사회는 더 많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즉, 이 이야기의 교훈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어떤 재화와 서비스든 비용을 치르지 않고선 결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 횡재세를 걷겠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U는 지난 9월 14일, 에너지 위기로 이득을 본 전력사 등에게 횡재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상에 공짜 없고, 일확천금도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EU의 전기요금이 10배 가량 폭등했습니다. 이는 EU의 독특한 전기요금제도 때문인데요.

EU의 전기요금은 가격이 가장 비싼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기를 기준으로 책정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며 천연가스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만드는 기업들은 생산원가는 그대로인 채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은 것입니다.

때문에 EU 집행위원회는 1000억 유로(140조 원)가 넘는 이익금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환수한 돈으로 일반가계와 중소기업 등에 지원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지난 10월 6일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발전사들의 이윤상한제는 물론 앞서 얘기한 전력사용 감축안 즉, 피크시간에는 전기를 의무적으로 5%를 줄이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겨울은 이제야 시작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평년보다 더욱 춥고 긴긴 겨울이 될 전망입니다.

한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유럽에서의 에너지 위기는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에서 경험했듯이 지구는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여파는 언제든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거듭, 세상에 공짜 없고 일확천금도 없습니다. 또한 이런 말도 있죠.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믿어서 믿는 게 아니라 믿지 않으면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거라죠. 위기 상황에선 모두 함께 연대한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