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요원을 위한 외교안보 키워드! #이스라엘극우화의기원 #유대인의유대인차별 #인구구조변화
😎 몇 해 전 베를린 장벽을 따라 20km를 걸었습니다.
비밀요원님, 안녕하세요. 🧠별샛별입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중동 특별작전을 발행합니다. 1편 <중동을 이해하는 기초 문법, “바다”>는 이곳에서 읽을 수 있구요.
오늘은 2편 <이스라엘 극우화의 기원 - 유대인의 유대인 차별>을 살펴볼 텐데요. 그전에 짧게, 베를린 여행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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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베를린 장벽 투어를 계획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들 다 간다는 주요 관광지는 리스트에도 없었습니다. 딱 일주일의 기간. 관심은 온통 현대미술에만 있었습니다. ‘국립’ 혹은 ‘주립’ 미술관에 더해, 대안공간이라고 하죠. 젊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만든 아트 플랫폼도 구석구석 찾아 다닙니다.
베를린의 속살을 느끼고픈 마음에 숙소는 튀르키예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는 노이쾰른으로 잡았고 가급적 버스를 타고 움직였습니다.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도 버스 2~3대를 갈아타며 뱅뱅 돌아갑니다.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지만 덕분에 여행자라면 결코 가지 않을 베를린 곳곳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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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미술관으로만 떠돈지 3일 쯤 지났을까? 이전엔 안 보이던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노이쾰른을 비롯해 대안공간이 자리잡은 동네엔 그래피티가 참 많았습니다. 인스타 등으로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고, 당시 베를린은 가장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예술씬이었습니다. “이래야 내 베를린이지”라는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중산층 이상, 딱 봐도 게르만 인구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동네엔 약속이나 한 듯이 그래피티가 없습니다. 그래피티는 베를린을 힙스터의 상징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계급/계층을 구별하는 표식으로도 기능했던 겁니다.
더 놀라운 건 대안공간들이 옛 베를린 장벽을 따라 줄지어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마침 베를린주립미술관에선 Loredana Nemes라는 작가의 <타자를 인지하는 것에 대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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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와 아랍 이민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 카페와 사람들을 촬영한 것으로 작가는 콕 집어 크로이츠베르크, 노이쾰른, 베딩 등의 동네 이름을 밝힙니다.
전체 생태계를 온전한 서사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계획을 촘촘히 짜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기에 바로 다음 날. 노이쾰른 남쪽의 칼 막스와 율리우스가 교차하는 거리에서부터 베딩 북쪽의 베를린장벽공원(마우어파크)까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장벽길을 따라 20km 남짓을 걸었습니다.
이런 느낌. 그 길은 동서 베를린 간의 ‘화해와 사랑, 평화’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이민자들로 줄세운 냉전의 방패막이였습니다. 이민자와 현지인 사이에 보이진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심리적 장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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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뜻하지 않은 조우는 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제주 예멘 난민 이슈로 이러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론이 요동쳤는데요. 독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2011 아랍의 봄을 비롯해 리비아 내전 특히,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날로 격화되며 2015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급격히 빠른 속도로 난민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유럽 중심부의 도덕과 죄의식을 강타한 건 그해 9월이었습니다.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가 튀르키예 지중해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난민 수용에 가장 개방적인 건 독일이었습니다. 2000년대엔 1~2만 명에 불과하던 난민이 2010년대부터 매해 10만 단위로 증가했고, 2015년의 독일 인구가 8100만 명 선이었습니다만 쿠르디 사건 이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습니다. 참고로 유엔난민기구의 2022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난민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360만 명의 튀르키예지만 독일 또한 우크라이나 난민 100만 여명을 포함해 총 240만 명을 받았습니다.
독일이 난민에 적극적이었던 건 인구고령화에 따른 대안정책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급격히 빠른 속도에 있습니다. 2015년에서 6년으로 넘어가는 한 해 동안에만 인구가 1.2% 증가했고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던 여론이 금세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일례로 , 반이민주의를 내세웠던 ‘독일을 위한 대안’ (극우)정당이 2015년엔 지지율이 5%였지만 2016년 3월에 치른 주의회 선거에선 득표율이 25%에 이르렀습니다.
여행 중에도 난민과 이민을 둘러싼 뜨거운 여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월드컵이 열렸었고, 거리의 TV에선 월드컵만큼이나 메르켈 총리의 얼굴도 자주 보였습니다. 의원내각제인 독일은 정당 간 연정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메르켈 총리가 속했던 기독교민주연합과 파트너 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 간의 집권여당 대연정이 난민 정책으로 깨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메르켈 지지율 또한 21%로 곤두박질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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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로 넘어가겠습니다.
202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동반한 하마스의 침공이지만 맥락적 배경은 양측의 강대강 충돌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극우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떤 경로로 극우화가 됐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드뭅니다.
저희도 궁금합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의 어떤 이들이 왜, 극우 정당에 투표하고 하마스와의 강대강 국면으로 내모는지가요.
그러나 그 이유는 중동 특별작전 1편과 지금까지의 얘기로 이미 80% 이상이 설명됐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인구구조의 변동입니다. 2015년 이후 난민 인구가 단기간에 대규모로 증가하면서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힘을 얻었듯, 이스라엘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다만 디테일은 조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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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비밀작전에서 몇 가지 숫자와 설명을 가져와보겠습니다.
- 이스라엘 인구 936만여 명 중 유대인 74%, 아랍인 21%
- (초기에) 동유럽에서 건너온 이들 많음. 현대적이며 경제적으로도 부유
- 19세기 말부터 홀로코스트 전까지 45만 명,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11만 명 이주
- 이스라엘 건국 후 1960년까지 65만 명, 구소련이 붕괴한 후엔 110만 명 이주
당장 눈에 띄는 건 상대적 소수를 차지하는 아랍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이미 76년입니다. 아랍인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생률이 향후의 인구구조를 변화시킬 순 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스라엘을 극우로 이끌 만큼 급격히 많은 아랍인이 빠르게 유입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자 다시 보이는 게 유대인구의 시대별 유입 규모입니다. 유대인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걸 ‘알리야’라고 칭하는데요. 19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유대인은 인구의 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 건국 전까지 22.5배, 현재 기준으로 300배 증가했습니다.
사태의 시발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급격히 빠른 속도의 대규모 인구 증가는 외부에만 충격을 주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느 만큼의 규모로 왔느냐에 따라 갈등을 빚습니다. 겉보기엔 단일대오의 부유한 유대인이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죠.
아래 그래프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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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알리야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나뉘고, 주요 출신 지역과 규모는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기) 19세기 말~1948 건국 전 → 다수의 동유럽 + 소수의 예멘 56만여 명
- (2기) 1948 건국 후 →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 65만여 명
- (3기) 1989~91 냉전 종식・구소련 붕괴 → 러시아 약 110만 명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사이에 인구가 두 배 가량 증가하고, 2기에서 3기 역시 인구가 두 배 가량 증가합니다. 그리고 각 시기 별로 이스라엘엔 완전히 다른 서사가 만들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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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부터 소개합니다. 유대인은 출신이 어디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 동유럽 → 아슈케나짐
- 서아시아+북아프리카 → 미즈라힘
- 러시아 → 러시아 유대인
흔히들 간과하는 게 이스라엘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단일한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슈케나짐, 미즈라힘, 러시아 유대인이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가 공존*하는데요.
*이 외에도 출신별로 다양한 유대인 존재
결론부터 말하면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우파/보수 리쿠드당 및 대연정을 견인하는 핵심 세력은 미즈라힘과 러시아 유대인입니다. 즉, 현재의 이스라엘은
- 이스라엘을 처음 만든 동유럽 아슈케나짐과
- 건국 후 이주한 서아시아+북아프리카+러시아 유대인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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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직접적인 설명.
이스라엘에 대해 많은 이들이 홀로코스트를 당한 민족이 과거를 망각한 채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억압한다며 비판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 유럽에 거주했던 유대인이 나치에게 홀로코스트를 당한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 현재 강대강 국면을 주도하는 건 홀로코스트로부터 거리가 먼 이들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유대인 정체성을 ‘홀로코스트’에서 찾는 태도를 거세게 비판합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온 건 홀로코스트라는 대학살을 피해서가 아니라 유대성서에 나오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일례로, 예루살렘엔 통곡의 벽이라는 유대인 성지가 있는데요. 네타냐후 총리의 소속 정당인 리쿠드당이 인기가 높은 이유는 유대인의 정신이 ‘통곡의 벽’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극적인 비유입니다만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국가 정체성을 명분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반면에, (현재의) 야당 정치인들은 건국 정신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 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아슈케나짐에겐 의미있는 의식이지만 미즈라힘과 러시아 유대인들에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로코스트를 환기시키는 건 유대인을 분열시키는 행동으로까지 여깁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유대인’ 이스라엘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들입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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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거칠게, 이스라엘 건국사는 주변 아랍국들과 전쟁을 치르며 시오니즘 국가를 건설한 영웅담(?)이기도 하지만 유대인이 유대인을 차별한 역사기도 합니다.
초기 이스라엘은 ‘알리야’의 인구 분포로도 알 수 있듯 아슈케나짐의 역사입니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영국과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아랍인들과 싸움도 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그러나 60만 명도 채 안 되는 인구입니다. 이들만으로 국가를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적극적으로 이스라엘로 불러 모으는데요.
여기서 두 가지 차이가 나타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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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즈라힘이 유대인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슈케나짐과 ‘같은’ 유대인임을 증명해 주는 건 ‘유대교’라는 종교 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기독교를 믿는 아랍인이라든지 한국어를 모르는 한국계 미국인이 있듯이 미즈라힘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히브리-유대인만이 아니라 아랍계 혹은 아프리칸에 가까운 이들도 많았습니다.
아슈케나짐이든 미즈라힘이든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2천 년이 넘습니다. 때문에 ‘순수 혈통’ 히브리-유대인을 찾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용하는 언어와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만으로도 양자가 다르다는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다른 건 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슈케나짐은 이스라엘에 오기 전부터 도시에 거주하고 학력 수준과 경제력이 높은 이들이 많았던 반면 미즈라힘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하층민 비율이 앞도적으로 컸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 이스라엘 건국에 필요한 두뇌는 우리 아슈케나짐이 담당할 테니 미즈라힘 너희는 노동력을 책임져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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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케나짐과 미즈라힘 간의 차이는 차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곧장 사회적 차별로 이어졌습니다.
애당초 이스라엘은 아슈케나짐이 건국한 나라인 만큼 정책 설계와 결정 권한은 이들에게 있습니다. 아슈케나짐은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중심 도시에 거주한 반면 미즈라힘은 - 앞서 베를린 장벽과 마찬가지로 - 팔레스타인과의 경계 지역들로 분산 배치됩니다. 수시로 포탄이 날아드는 그 위험한 곳으로 말이죠.
이스라엘이 이제 만들어지는 국가인 만큼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두 팔 벌려 초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은 히브리-유대인으로서든, 유대교를 믿어서든 어느 지역에서든 소수자로서 차별 받으며 하층민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천년의 약속을 믿고 건너온 이스라엘에서도 하층민으로 살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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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정치인을 만나고 싶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아슈케나짐의 이스라엘입니다. 다만 한 가지 유리한 건 인구입니다. 미즈라힘과 아슈케나짐의 수가 엇비슷한 거죠. 게다가 민주주의의 매력은 1인 1표제에 있습니다.
1977년이었습니다. 아슈케나짐이 동유럽 출신인 만큼 좌파/사회주의 전통이 강했고 정권은 늘 이들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우파/보수 리쿠드당이 미즈라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처음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합니다. 메나헴 베긴 당시 리쿠드당 당대표이자 총리는 미즈라힘에겐 구세주같은 인물인데요.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에 따라 투표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전통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투표합니다.”
아슈케나짐과 미즈라힘은 사용하는 언어는 물론 인종(ethnic)이 다른 이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유대인(nation)으로 만들어주는 연결고리는 ‘유대교’라는 종교인데요. 리쿠드당이 이를 정확하게 파고 든 겁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위치한 ‘통곡의 벽’이 유대인 정신이라는 걸 천명한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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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했듯 89~91년에 구소련이 붕괴 후 러시아 유대인이 집단 이주하는데요. 이들은 미즈라힘보다는 히브리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 살았던 만큼 정교회를 믿습니다. 종교로서의 유대정신을 강조하는 미즈라힘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일자리와 주택을 두고도 경쟁합니다.
독일에선 8,100만 명 중 100만 명이 늘어났다고 요동쳤는데 이스라엘은 당시 인구가 45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00만 명 이상이 단기에 유입됩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혼란도 함께 밀려듭니다.
그럼에도 정치에선 한 마음 한 뜻인데요. 이유는 리쿠드당이 좌파/사회주의 정당보다 “화끈해서”입니다. 大러시아 불곰국에서 별별 걸 다 보고 건너왔더니 고작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어찌할지 몰라 쩔쩔 매는 좌파/사회주의 정당은, 자신들의 안보를 책임지기에 못 미덥다 판단하는 겁니다.
안보 정책에 대한 지지는 미즈라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무슬림으로부터 상당한 차별을 받아 왔던 만큼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의식주’가 갖춰져야 합니다. 다만 먹는 건 길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같은 옷을 며칠 째 입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요?
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구가 급격히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어디에 지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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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비밀요원님은 눈치채셨겠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이슈 중 하나인 ‘정착촌’으로 연결됩니다.
이스라엘 내에 더이상 주택을 지을 공간이 없으니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이스라엘 영토만큼 치안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집값도 쌉니다. 그렇다면 누가 갈까요?
적어도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 정착한 아슈케나짐이 갈 가능성은 낮습니다. 결국 유대인이지만 ‘후발주자’ 유대인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늘 갈등을 빚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습니다. 아슈케나짐에게도 불만이 더욱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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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레디라는 또 하나의 군집이 2000년대 이후 추가됩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갑자기 유입된 존재는 아닙니다만 이들의 독특한 종교적 신념이 인구구조를 변화시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있듯, 하레디들은 유대교 근본주의를 추구합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유를 유대인들이 세속적으로 변질된 데 따른 죄값으로 판단하며 (모두가 그러한 건 아니지만) 세속적-사회활동도 거부한 채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집단생활을 이어갑니다.
세속에의 거부. 이제는 군에 가지만 한때는 징집 의무도 거부했습니다. 피임을 죄악시하고 출산을 적극 장려해 이들만의 출산율이 6.6에 이릅니다. 일부 하레디들은 시오니즘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이 멸망해야 한다고도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세속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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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인터넷에서 군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출생률이 높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깃발을 함께 흔들며 시위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기사를 봤다면 하레디일 확률이 적지 않습니다.
세속을 거부하지만 정작 생계는 국가보조금으로 연명한다는 사실이 모순적이라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그러나 평균 출산률이 6.6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합니다. 이들만을 위한 정치정당도 있으며 총120석 중 18석, 15%나 됩니다.
누구도 무시하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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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극우화는 누가 이끄는가?
건국 직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미즈라힘과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 등에서 건너온 러시아 유대인 그리고 유대교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하레디입니다. 모든 미즈라힘과 러시아 유대인, 그리고 하레디가 극우연정 정당에 투표하는 건 아니지만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사회적으론 상극입니다. 하레디는 세속적 활동을 거부한 채 국가보조금으로 연명하고, 러시아 유대인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습니다. 미즈라힘은 자신들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건 유대교라는 종교라 여기지만 세속적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집과 직장을 두고 경쟁합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더라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홀로코스트’ 유대인으로 규정 짓는 데엔 비판적입니다. 동유럽 아슈케나짐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존재이며, 그들의 안보 정책도 믿을 수 없다 판단합니다. 혹은 유대인을 세속화시키는 원흉입니다. 이들은 동유럽 아슈케나짐을 반대합니다.
즉,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속된 말로) 코쟁이 아슈케나짐의 많은 수는 이스라엘 극우화 노선에 서 있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과의 양국 방안도 지지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 역시 그들이 만든 천 년 약속의 땅, 이스라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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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특별작전]2023 이스라엘-하마스 완벽 총정리 ★★★★★
- (10/17) ①중동을 이해하는 기초 문법, “바다” LINK
- (10/19) ②나를 ‘홀로코스트 유대인’이라 부르지 말아줄래? ft.이스라엘 극우화의 기원
- 혁명으로 수립된 하마스 독재체제, 위기에 더욱 강해진다
- 지상군 투입의 딜레마 “완전한 박멸의 불가능성과 난민”
- Quo Vadis, 중재자 없는 국제사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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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밀작전을 읽으며 놀라는 비밀요원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베를린 도심 곳곳엔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상징물과 기념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죄의식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와 선을 긋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닮아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민자-그래피티-계급의 순환고리를 복제라도 한 양 이스라엘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구분해 놓은 장벽은 어쩌면, 유대인과 유대인 간의 심리적 거리두기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심리적 거리두기의 후과를 가장 끔찍하고 참혹한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난 비밀작전에서 아랍 -순니들이 “레반트(동) 지역이 누구의 땅이냐 ”를 두고 싸웠다면 현재 이스라엘은 누가 ‘진짜’ 유대인인지를 두고 분열합니다 .
그리고 그 분열의 창 끝이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향하고 하마스와의 강대강 충돌로 치닫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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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후기는 이곳에 남겨주세요~ 짧은 인삿말이라도 비밀작전을 만드는 우리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비밀요원들이 보낸 모든 편지는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건강한 하루 보내시구요. 중동 특별작전으로 진행됩니다. 세 번째 시간엔 하마스 독재체제를 분석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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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특별작전] 2023 이스라엘-하마스 완벽 총정리
- ②나를 ‘홀로코스트 유대인’이라 부르지 말아줄래? ft. 이스라엘 극우화의 기원 LINK
- ①중동을 이해하는 기초 문법, “바다” LINK
[10월 2주]
- 들어는 봤니? 이란 노마딕 유튜브 채널 #Abza LINK
- 팔레스타인 독립을 원하지 않았던 중동국가들 LINK
[추석맞이 특별작전]
- 보일러, 이제 누가 고치나? ft. 어느 시골 수녀의 일기 LINK
- ‘추석’이라는 특별한 총선 시간표 ft. 여의도 문법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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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산들강으로
탐험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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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서울 도심 투어가 아닙니다. 6~70년대에 지어져 올해 혹은 몇 년 안에 철거 예정인 아파트들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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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전문가가 요즘 국제사회 이슈를 쉽게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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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일) 20~22시(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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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내용들을 다루나요?
- 테마 1. 세계지도 다시 그리기, 세계 루트파인딩, 아날로그 책읽기, 하드코어 독서모임 등 외교안보 집중 코스
- 테마 2. 정책공작소, 미디어 모자이크, 빅테크 느와르, 중산층 모더니티, 지속가능성(교육・노동・환경) 등 한국사회 딥다이브 코스
- 테마 3. 갈등디자인, The First Zero 글쓰기, 델타 월딩 마법학교, 처음 만나는 영화 등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재충전하는 코스
🌈 무엇을 가져갈 수 있나요?
-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나를 성찰하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갑니다.
-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들여다 보며 공동체 가치를 회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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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세계를 향해! 델타 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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