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외교를 다시 해야 한다고? 

         #노무현 #이명박 #해외자원개발계획 #ODA #협력 

• 여성 교육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 

•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미얀마로 간다고?

• 보다 정교하게 먹고 싶어 젓가락을 씁니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이슈가 썩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가버나움>(2018)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라는 대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죠. 레바논을 배경으로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12살 소년, 자인 알 하지의 삶이 120분 간의 러닝타임에 담겨 있습니다. 

  피임에 대한 사회적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님은 자인 아래로 6명의 동생을 더 낳지만 가족을 부양하는 데에는 무능하기만 합니다. 결국 자인이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만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출생기록이 없어 의료와 교육 서비스에서 비껴 나가 있다든지 조혼, 빈곤, 난민, 아동매매 등 저개발국가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사실 영화 보기를 꽤 오랫동안 주저했습니다. 감상 중에도 stop 버튼을 여러 차례 눌러야만 했죠. 폴 발레리의 문장을 빌리자면,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절망에 함락되어 아무 일도 안/못 해선 안 될 겁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직시하고 공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선의’와 ‘열정’만으로 이뤄질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국제개발협력도 엄연한 일터인 만큼 직무 수행에 적합한 전문성이 갖춰져야 하며, 여느 산업이 그렇듯 다양한 층위의 조직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라야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일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성과를 꼼꼼하게 평가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다소간은 냉정하게,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정부예산의 0.68%, 약 3.2조 원이 ODA에 쓰이는데요.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되물어야만 할 겁니다. 그러나 질문을 잘 던지기 위해선 해당 필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이 오가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첫 번째 시간으로 김성혜 전 WHO 기술사무관・현 한양대 의대 교수님과 Sunday Seesaw 를 진행하며 글로벌 보건 ODA 현황을 살펴 봤다면, 두 번째입니다. 

 

  아쇼카 재단에서 아시아 지역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Garu Kim 님을 모시고 그의 발자취를 통해 교육 ODA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깜짝손님으로는 에듀테크의 대명사기도 하죠. 이수인 에누마 대표님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봤습니다. 

 

  국제개발협력이 여전히 낯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일의 본질은 어디에서든 동일합니다. 비밀요원님이 지금 하는 고민이 있다면 이 인터뷰에서 해답을 찾으리라 확신합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 역사가 좋았고, 강단에 서는 게 꿈이었다고 들었다.  

🧑🏻 어린 시절에 삼국지를 비롯해 역사 소설에 흠뻑 빠졌다. 

  역사를 전공해 이를 재미있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역사교육과에 진학했고, 한국사는 아무래도 중국과 동아시아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잖은가? 북경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절대빈곤’에 눈 뜨게 됐다. 

  빈곤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며, ‘절대빈곤’은 아프리카같은 곳에나 해당하는 얘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중국은 대도시에서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병원이 없어 진통제로 버티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이들이 겪는 ‘절대빈곤’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나자 역사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현재의 문제를 외면한 채 과거를 분석하는 일이 무기력하게 다가왔다. 

  그해 겨울엔 사스마저 발발했다. 

⛵️ 2002~3년의 그 사스 말인가? 

🧑🏻 그렇다. 

  학교 친구들은 물론 매일 인사하던 경비 아저씨도 돌아가시는 등 사망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갑작스런 팬데믹에 모두가 당황했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학 안에만 머물렀다면 경험하기 어려운 빈곤과 질병 등의 사건들을 접하며 내면의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하고 죽을 때 후회가 없을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산다면 인생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국제개발협력(ODA)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하고 

⛵️ 요즘은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80% 가량이 원조를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 한비야 당시 월드비전 구호팀장이 꽤 유명했다. 

 

  그의 활동이 국제개발협력으로 읽히기보단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생소한 곳이나 위험한 곳을 여행 다니며 좋은 일을 한다는 정도로 알려진 점은 있지만 어쨌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작게라도 활동을 하고 싶었다. 마침 중국에 있을 때 북한이탈주민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실향민이셨기에 친숙함을 느꼈다. 그래서 탈북 청소년이 한국에 정착하는 걸 돕는 NGO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고,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 영국을 선택한 특별한 배경이 있는가? 

🧑🏻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학문의 시작은 원래 식민지학(Colonial Studies)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자국의 식민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연구하던 게 현재의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이 됐다. 국제개발협력으로 유명한 학교들은 거의 모두 이런 역사를 갖고 있다. 

 

  내가 다녔던 대학원도 다르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면 150여 년 전에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떠났던 전도사가 마을 아이들의 나이와 키 등을 적어 놓은 자료도 보관되어 있을 정도다. 이 또한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인 만큼 굉장히 부러우면서도 ‘이것이 이 나라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구나’라는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 델타 월딩 비밀작전에서 다뤘듯이, 한국의 ODA 사업수와 예산이 커지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중반에 자원외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 이 일을 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걸 많이 떠올리게 된다.

  학문으로서의 ‘역사’는 그만 뒀지만 ‘역사적 시선’은 숙명처럼 따라 다닌달까? 

 

⛵️ 20대 중반의 나이에 또래보다 사색의 폭이 상당히 넓고 깊었다는 느낌이다.  

🧑🏻 대학원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처럼 대학을 바로 마치고 온 20대는 거의 없었다. 60대 분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30대 초반이었는데 자원봉사일 지라도 개발도상국에서 최소한 1~2년 정도의 경험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참고자료를 많이 읽고 들어가도 막상 토론을 하면 현장에서의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리거나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경험이라는 게 굉장히 협소할 순 있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만들어진 고민과 질문이기에 그 날카로움을 따라갈 수 없었다. 내가 별 다른 경험 없이 석사를 한다는 게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트렌드만 수박 겉핥기로 훑고 지나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정이 끝나면 무조건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처음 간 곳이 캄보디아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놀라기도 했을 텐데, 어땠나?  

🧑🏻 지금 돌아보면 아무 것도 모를 때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는 게 정말 많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했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친구들도 있으니 자신감과 호기심이 상당히 넘쳐났다. 첫 근무지라는 점 때문에 의욕도 컸다. 또한 캄보디아는 세계 경제 100위권을 맴돌 정도로 가난한 데다,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 (레퍼런스마다 다르긴 하지만) 인구의 1/3 가량이 대학살을 당하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박찬 심장이었다. 

 

  이미 중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경험했기에 문화적 충격이나 생활의 불편함이 크진 않았다. 실제로 캄보디아가 그렇게까지 힘든 근무지는 아니다. 캄보디아가 관광지로 유명한데 그만큼 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편의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1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들 휴가 잘 다녀 왔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살짝 화가 났다. 열심히 일 하고 왔는데 왜 휴가라고 하지? 이후론 네팔과 아프리카 등을 자진해서 나갔고 나이지리아에 3년 정도 있다 오니 선배들이 이제 너한테 경어를 쓸게, 라고 말했다. 

 

 

⛵️ 나이지리아가 오지라서 그런 건가? 

🧑🏻 나라마다 난이도라는 게 있다. 

 

  외국인으로서 경험하는 생활의 불편함도 있겠지만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나라의 크기라든지 역사와 뒤엉킨 정치적 복잡성이다. 단순한 교육 사업일 지라도 해당 국가가 직면해 있는 상황에 따라 결코 단순해질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캄보디아와 나이지리아의 난이도가 크게 갈린다.  

 

⛵️ 캄보디아와 네팔에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인터내셔널 민간 NGO 소속으로 각 1년을 있었다. 어떤 일들을 했나? 

🧑🏻 흔히들 학교가 없어서 배움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학교가 있어도 안 가는 사례가 정말 많다. 캄보디아를 예로 들면, 지금은 바뀌었지만 2007~8년만 해도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가 많았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이 10살 쯤 되면 남자아이와 화장실을 같이 쓰는 걸 꺼려하며 학교를 안 나온다. 월경마저 시작하면 아예 학교를 관둬버린다. 생리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나이 대 여자아이들의 중퇴율이 크게 오른다. 

  그래서 화장실을 두 개 이상 만드는 개선사업을 한다. 남여 화장실을 분리만 해두어도 여자아이들은 내가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의 평안을 찾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적은 돈을 들이고도 효과가 꽤 크다. 

 

  교수법 개발도 중요 사업 중 하나다. 현지 교사들은 한국처럼 교육대나 사범대 출신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오는 분들이 많은데 체벌 문제도 있고, 교과서도 많이 부족하다. 여러모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흥미를 잃고 역시 학교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들과 아동 친화적 수업 방법을 함께 연구하며 훈련도 하고,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과서나 교복 등을 제공한다. 

  학부모들을 모아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알리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캄보디아를 비롯해 개발 붐이 일어나는 국가에선 농사를 지어 오던 땅을 하루 아침에 잃는 농부들이 상당히 많다. 글을 모르니 이유도 모른 채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기도 어렵다. 내가 정확하게 아는 것 외엔 다른 걸 할 수가 없다. 

 

  글과 셈을 모른다는 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말과도 같다. 문맹률을 낮추는 건 인간의 권리 문제다. 그래서 이런 걸 부모님께 설득하고, 교사와 부모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상담의 장도 조성한다. 

“글과 셈을 모른다는 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말과도 같다. 

문맹률을 낮추는 건 

인간의 권리 문제다.” 

⛵️ 교육 ODA라고 하면 ‘학교를 짓는’ 이미지가 상당히 크게 박혀 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교 운영과 교육환경 조성 등에 필요한 일들을 모두 다룬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 아이들이 글을 읽게 되는 건 끝없는 개입의 결과물이다.  

 

  학교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기획해야 하고, 평가 작업도 중요하다. 이 학교는 잘 되는데 왜 저 학교는 안 되는지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지역 특성에 맞춰 다시 조정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교육 사업이란 학교 하나를 멋지게 짓는다고 끝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교육과 영양, 보건은 불가분의 영역이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여자아이들이 직면한 생리대도 확충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담당했던 사업은 <어린이 영양・보건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가 공동으로 펀딩을 조성해 진행했다. 

 

⛵️ 이야기를 들으며 또 놀라웠던 건 교사 교육은 물론 부모 교육도 한다는 점이었다. 겉보기엔 교육 사업이지만 궁극적으로 마을 거버넌스를 새롭게 기획하고 구축한다는 인상이다. 

🧑🏻 정확한 지적이다. 

  기업을 예로 들면 내가 A부서 소속으로 B의 일을 하지만, B의 일은 C, D와 연결되어 결국 Z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국제개발협력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육 분야에서 교육 전문성을 갖고 일을 하지만, ‘교육’이 가능한 환경(Enabling Enviornment)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기관과 레벨 단위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협력한다.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마을의 거버넌스를 세우는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즉, 국제개발협력은 시스템과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다만 내가 어느 기관 소속으로 어느 레벨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일의 범위와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 참고. 

• 국제기구로 추진되는 사업을 다자, 한국 정부가 해당 국가와 직접 교류하는 걸 양자라고 칭함. 
• 양자사업 추진 시, 국무조정실이 콘트롤타워 담당 
• 외교부(무상) 및 기획재정부(유상)가 사업을 주관・배분  
• 코이카 및 기타 행정부처・지자체 등이 사업을 기획・집행 
• 세이브더칠드런같은 NGO가 이를 현지에서 직접 실행 

⛵️ 캄보디아와 네팔을 거쳐 아프리카 우간다로 갔다. 그런데 소속도 바뀐다. 민간 NGO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한국 정부기관인 코이카(KOICA)로 옮겼다. 앞서 소속 기관과 레벨에 따라 하는 일의 범위와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었나?  

🧑🏻 캄보디아와 네팔에선 마을 이장이 내가 만나는 최고 레벨이었다면,

  우간다에선 36년 장기독재로도 유명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현장에서 사업을 실행하는 주체가 민간 NGO라면, 코이카는 다양한 NGO가 실행하는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약치고 기름치는 일이라 생각하면 된다. 

  덕분에 교육부 장관이나 정치인 등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는데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나 역시 같은 시간을 쓰고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신 이전처럼 마을 주민이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굉장히 어려워졌기에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닌가, 번민키도 했다. 

 

  그리고 한국은 각 국가마다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 분야가 있다. 비교 우위를 살려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분야에 더 힘을 쏟는다.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원조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해서기도 하다. 

 

  우간다는 교육과 인프라 구축이 전략 과제였고, 나는 ‘원조 효과성 전문가’로서 다양한 사업을 관리했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을 개선하거나 직업훈련원을 설립키도 했고, 우간다는 기후가 아주 좋다. 씨를 뿌려두기만 해도 과일이 쑥쑥 자라지만 상품성은 상당히 낮다. 그래서 이를 높이기 위해 과일 가공 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 2015, 나이지리아

   (상) w/ 지미 아그바지에(Jimi Agbje)

   (하) w/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  

 

⛵️ 캄보디아에서 시작해 네팔, 우간다, 나이지리아로 넘어가는 과정이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생태계의 우주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선 3년을 거주했다. 

🧑🏻 영국계 컨설팅 펌 소속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국가 및 기관과 프리랜서로도 협업을 많이 했다. 

 

  코이카가 세네갈에서 OO 사업을 한다든지, 컨설팅 펌이 앙골라에서 XX 사업을 하면 나이지리아를 베이스 캠프로 두고 외부 전문가로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우간다에서의 특수한 경험도 한몫 했다. 그동안은 한 번도 안 가본 나라에서 사는 게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일이 내 적성에 잘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간다에서 1년 쯤 됐을 때 집에 도둑이 들었다. 강도들이 마취제를 쏜 후 집을 모두 털어갔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두려워졌다. 만약에 내가 마취가 잘 듣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강도와 눈이라도 마주쳤더라면 나는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이렇게 죽기는 싫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썸남이 나이지리아에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롱디를 하고 있었는데 나이지리아에 자리가 생기자 바로 신청해 들어왔었다. 이 사건으로 그와의 관계가 급진전됐고 차라리 같은 나라에서 일을 하는 게 어떤가라는 얘기가 나와 우간다에서 나이지리아로 옮겼다. 

↑ 2015, 나이지리아-앙골라-세네갈  

 

 

⛵️ 무사히 살아있어줘서 그저 감사하다. 동시에 상당히 드라마틱한 전개다. 생의 동료를 찾게 됐으니. 나이지리아에서의 활동을 좀 더 듣고 싶다. 

🧑🏻 나이지리아의 정치 수도는 아부자, 한국으로 따지면 세종시 같은 곳이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 수도는 라고스다. 

  인구가 2,600만 명이 넘어서는 등 인구 밀도가 굉장히 높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도시다. 그런데 이곳에 저가 사립학교가 아주 많다. 한국처럼 부유층이 다니는 사립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를 짓는데 제약이 크기 때문에 동네 구석에 텐트를 쳐 놓고 학교라 이름 짓고 운영하는 것이다. 여기 다니는 아동 숫자가 한국의 청소년 숫자보다 훨씬 많다. 

 

  문제는 허가 받지 않은 학교들이 많아 관리가 잘 안 된다. 교사 자질이나 환경 등 학생들이 안전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있기에 개선사업이 필요한데, 언제나 ‘돈’이 큰 장벽이다. 학교 운영을 위해 교장들은 고리대금으로 사채를 끌어다 쓰고 텐트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들도 넉넉한 살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속했던 컨설팅 펌이 나이지리아 3대 은행과 직접 연결해 대출 상품을 만들었다. 텐트학교가 3천 개 정도 있는데 3년 간 1억 원만 대출해 줘도 3,000억 원이며 학교 개선사업을 통해 충성도 높은 장기 고객이 될 수 있으니 은행에도 이득이다, 라는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 단위에서 은행장을 만나 설득하긴 어렵다. 그러나 컨설팅 펌은 리서치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출 규모와 이율, 상환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제약이 없다. 은행—정부-텐트학교를 모두 연결해 가이드라인도 만든다. 그동안 내가 했던 사업 중에서 예산 규모가 제일 컸다. 

↑ 2015, 나이지리아 w/ 동료들 

↑ 2019, 미국 w/ 빌 드레이튼 아쇼카 재단 대표(Bill Drayton)

“주민들의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끌어 올린다든지,

거버넌스 역량을 스스로 구축하고,

솔루션을 가진 사람들을 키우는 등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 아쇼카 재단이 한국에서도 체인지메이커를 발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체인지메이커를 아쇼카 재단에서는 펠로우라 부른다.

 

  2013년부터 13명을 선정했는데, 교육 분야로는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있다. 이수인 대표는 원래 엔씨소프트의 게임 기획자였다. 그런데 자녀분이 두 달 일찍 태어나면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임 개발자였던 남편과 함께 글과 셈을 게임처럼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인 토도수학과 토도영어를 개발하게 됐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굳이 게임이 필요없다. 그러나 장애 아동은 물론 학습 습관이 없거나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당장 학교가 지어질 수 없는 저개발국가나 난민촌에선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테블릿을 가져다 주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학습이 이뤄질 수 있다. 언어라든지 문화적 컨셉을 조정하는 작업은 거쳐야겠지만 하나의 솔루션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 

 

 

⛵️ 지난 주 인도네시아 편에서도 토도수학과 콴다가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는 얘기가 나왔다. 2년 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러닝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전통적 교육의 개념에 비춰 봤을 때 학교만의 역할이라는 것도 있다. 동년배는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저개발국가는 안전이나 영양・보건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데에도 학교는 중요한 창구다. 교육의 기술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연결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사범대 출신이기에 에듀테크가 출현한 초기에는 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도 했다. 교육이란 교사와 친구들과의 교류 과정은 물론 몸으로 배우는 것도 많은데 테블릿을 통해서는 이를 구현하기 어렵다. 글자 하나 익혔다고 교육에 관해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도 깊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조차 보급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 교육이 완전히 중단되는 상황을 보며 ‘교육의 시급성’이라는 걸 떠올리게 됐다. 학교와 교사 등 모든 게 갖춰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것. 그 역할을 에듀테크가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국제개발협력은 하나의 플레이어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지난 십여 년을 되돌아 보면 다양한 플레이어가 다양한 조직과 층위에서 톱니바퀴 맞물리듯 협업을 할 때 최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특히 틈새 안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이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 마침 이수인 에누마 대표님이 이 자리에 함께 있다. 인도네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들었다. 에누마 얘기를 좀 더 들려달라. 

📲 클럽하우스에 공지가 떠서 시작할 때부터 듣고 있었는데, 이렇게 인사 나누게 되어 반갑다. 

 

  인도네시아는 IT산업 및 B2C시장 등이 굉장히 빨리 성장하고 있다. 모바일폰 보급률도 상당히 높다. 다만 기본적인 문해나 수리 능력의 격차가 꽤 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 동안은 학교가 거의 멈춰 있기도 했다. 

  2020년 초에 인도네시아로부터 펀딩을 받아 인도네시아 문해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알파벳을 익히고 단어를 습득하고 책을 읽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된다. 필드 테스트를 통해 효과성도 입증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종교 기관이 운영하는 학교가 16% 정도 되는데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많다. 그래서 이곳과 파트너십을 맺어 디지털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11월 초에 무료 버전을 온라인에 공개키도 했다. 

 

  에누마가 바라는 건 공교육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 문해 사업을 대규모로 진행하는 방안을 좀 더 체계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에누마는 사업 특성 상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지만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 Garu Kim 님을 통해 많이 듣고 배우고 있다. 에누마 이야기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2019, 미국 

⛵️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오늘 대화는 자립과 연결,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은? 

🧑🏻 나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기에 즐겁게 얘기했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전혀 없을 순 없다.

 

  저개발국가는 독재인 경우가 많고, 동양인 여성에게 가해지는 현지에서의 차별도 결코 적지 않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 하더라도 현지의 사회・문화적 특성 때문에 좌절하게 되는 상황도 자주 오며,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폭력성 때문에 불가피한 갈등도 발발한다. 나를 비롯해 ODA 기관을 이용하려드는 이들도 존재한다. 

 

  내가 성자도 아닌 만큼 화도 나고 환멸이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지만, 결국 시스템과 생태계의 문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며 원래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이 있어야 2가 있고, 3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업무 단위마다 이게 최선인가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감히,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 의구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교육을 비롯해 국제개발협력 사업 하나하나로는 당장의 빈곤을 해결할 순 없지만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나와 뜻이 비슷한 사람들과 긴 호흡으로 함께, 걸어가고 싶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는데 작은 단서라도 드릴 수 있었다면 내가 영광일 것이다. 긴 얘기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Garu Kim 님의 멋짐과 탁월함은 단순히 선하고 좋은 일을 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의 발자취만으로도 교육은 물론 국제개발협력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함께 확인할 수 있을 정도죠.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낸 후원금으로 학교를 몇 개 지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해당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하는지를 되물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비밀작전, 친구 및 동료들에게 공유하는 것 절대 잊지 마시구요. 다음 비밀작전에선 겨울방학 특집 마지막 시간! <요즘애들, 글로벌 MZ>들의 고민과 일상을 전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즐겁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