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서에 쓰면 폼 나는 마법의 단어: 트릴레마

2022. 9. 3.

😎 너무 빨리 의견을 정할 것을 강요한다는 말!

공유한 편지 내용이랑 문제의식이 되게 공감가네요.
내용이 너무 좋네요. 따로 의견은 없고 공부가 되어 글 남기고 싶었어요.
의견 선택을 강요하기보다 생각을 하고 최선의 답과 선례를 고민해 보자는 델타 월딩의 이야기가 매사 판단도 느리고 모르는 거 많은 저에게는 힐링과 도전이 되었어요.

안녕하세요, 비밀요원님! 이번 주는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주제로 진행됩니다.

☕️화요일 Tea Talk은 윤석열 정부 100일을 맞아 미국・중국・조선(북한) 등의 외교안보 의제가 한국사회의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대통령 지지율과 이준석 기자회견,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등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목요일 Deep Dive는, 본디 의견을 갖는다는 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동해 탈북 선원 북송 사건’이 한국사회에 던진 두 가지 질문을 풀기 위해 유럽인권재판소 등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토요일 Surfing Summary는 국내외 양질의 아티클을 요약・정리해 드리는 날로서 기계적인 번역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문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과 배경 등을 함께 설명합니다. 늘 그렇듯 원문이 저희들의 글보다 더욱 훌륭합니다.

오늘은 뷰파인더를 조금 넓혀보겠습니다. 남북관계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조망할 텐데요. 평소와 달리 하나만 소개합니다. 꽤 만만찮은 학술논문이지만 이 글 하나만 제대로 이해해도 지난 몇 년 간의 일들이 종합적으로 정리됩니다.

또한, 오늘 소개해 드리는 트릴레마라는 개념은 폼나는 보고서를 만드는 데에도 꽤 유용한데요. 트릴레마가 도대체 뭔지 차근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트릴레마”

Deterring a Nuclear-Armed Adversary in a Contested Regional Order

: The “Trilemma” of U.S.–North Korea Relations

Roundtable in Asia Policy 23 | 2017.01.31. | Van Jackson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어느 쪽도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를 딜레마라고 하죠.

트릴레마는 변수가 하나 더 늘어 세 개 모두 마뜩찮은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최악을 피하기 위해선 차악이라도 취해야 합니다. 즉, 비용이 가장 낮은 하나를 포기하고 두 개를 얻는 겁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반 잭슨의 글(2017)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트릴레마에 빠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전쟁방지, 지역안정(역내패권), 핵비확산 중 둘만 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각각의 키워드가 의미하는 건 이렇습니다.

①전쟁방지란

미국의 동맹국들을 공격할 시 핵을 이용해 보복한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을 사전에 억제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기도 합니다.

②지역안정이란

주한미군 등 미국의 군사력을 한반도 전방위에 전개함으로써 지역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걸 의미합니다. 미국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하는 지표기도 합니다.

③핵비확산이란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핵을 가지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겁니다. 동맹국은 핵우산이 있으므로, 적국은 섣부른 행동이 가져올 화마로 인해 핵을 못 가집니다.

셋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반 잭슨은 안 된답니다. 딱 두 개만 선택하랍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전쟁 할 사람 손?
미국 없는 동아시아는 어때?
북핵과의 공생, 콜?

비밀요원님이라면 ▲전쟁 ▲미국 없는 동아시아 ▲북핵과의 공생이라는 트릴레마 중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왜 이런 시련을 주냐구요?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 좁게는 한반도는 이런 상태였습니다.

한국전쟁 더이상 NONO → 한미동맹 ㅇㅋ? 콜! → 주한미군 주둔 및 핵우산 제공 → 전쟁하고 싶어도 미국에게 핵으로 보복당할 게 자명하므로 누구도 못함. → 덕분에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No.1 패권국 유지 가능 → 누구도 핵을 못 가짐. → 미국의 핵전력에 대칭되는 무기가 없으므로 누구도 무모한 전쟁을 일으킬 의욕 상실

즉, 전쟁방지 → 지역안정(미국패권) → 핵비확산이 선순환을 이루며 핵없는 평화로운 동아시아 질서가 유지됐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후 1993년입니다. 조선(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러한 흐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핵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쏟았지만 결과는 여섯 번의 핵실험 끝에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습니다. 그러자 이젠 역순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군사력 등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미국의 동아시아 내 패권 지위도 함께 흔들립니다. 연쇄적으로 전쟁 위기도 고조됩니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도 이런 위기에 한몫합니다. 게다가 미국은 멀게는 베트남전쟁, 짧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미국 이외 지역의 군사력이나 영향력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고 있어 의심은 확신이 됩니다. 트럼프 정부의 고립외교는 쐐기를 박았죠.

한국의 대중담론도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한반도는 전략 단위 즉,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큰 규모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측은 소규모 도발은 간혈적으로 일으켜 왔으며, 특히 2010년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분기점으로 한국도 독자적으로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갑니다.

아무튼 트릴레마입니다. 반 잭슨은 전쟁방지, 지역안정(역내패권), 핵비확산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말합니다. 즉, 정치 지도자라면 아래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요. 비밀요원님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전쟁 할 사람 손?
미국 없는 동아시아는 어때?
북핵과의 공생, 콜?

☢️북핵, 지금처럼 무시하고 살면 안 되나요?

북핵을 무시한다는 건 사실상 북핵과 공생한다는 건데요. 오바마 정부가 이에 근사한 포지션이었습니다. 북핵을 일시적으로 묵인하되 각종 경제제재와 해상무역 차단 등으로 맞서며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반 잭슨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경제제재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협상이나 핵 확산 활동을 중단하려는 의지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석가들은 거의 없다.

경제제재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지난 비밀작전에서 설명했듯이 오히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이뤄지는 지하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對러시아 경제제재는 원유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당장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역질서가 바뀌는 게 아니기에 모른 척 무시하거나 관심 갖지 않는 지금의 상태를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받아 들이는데요.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건 핵도미노입니다.

예외적으로 한 국가를 인정하면 다른 국가들도 핵을 가지려 할 게 자명합니다. 이란, 사우디, 시리아같은 국가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죠. 그 과정에서 북측은 핵 관련 물질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전파할 수도 있습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이미 국제사회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외를 둬버리면 국제질서 전체가 교란되고 누구도 더이상 합의된 규범을 신뢰하거나 따르지 않을 겁니다.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사회가 아노미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따라서 북핵과의 공생 즉, 핵비확산 포기는 국제질서 전체에 영향을 주기에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까이 거, 그냥 전쟁 해버립시다.

거듭, 북핵은 한반도가 아니라 국제사회 차원의 이슈입니다. 그러나 비핵화에 이르는 방법론이 문제인데요.

경제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만큼 예방전쟁으로 없애자는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예방전쟁 비용이 가장 저렴한 선택지라는 판단이 선다면 평화를 포기해서라도 ▲핵비확산 ▲지역안정(미국패권) 두 개는 지키는 상황이 됩니다.

다만 전쟁방지 포기는 사실상 북측체제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기에 대규모 난민 발생과 그밖에 사회적 혼란 등을 관리하기 위한 또다른 비용을 계산해야 합니다.

국경지역에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므로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요. 반 잭슨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예방전쟁은 중국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다
심지어 북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중국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예방전쟁의 조건을 확정짓기가 어렵습니다. 예방전쟁은 상대가 전쟁을 치를 의도는 없지만 미래에 발생할 지도 모를 위협을 미리 대비하겠다는 건데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함정에 빠지며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살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한편, 예방전쟁 이후 후속 관리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서든 통일에 근사한 형태로의 통합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요. 통합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필요한 과도기 기간은 11~20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예방전쟁을 해서라도 북핵을 없애자는 아이디어는 이해하기엔 가장 쉽지만 돈과 시간, 중국과의 관계, 국제사회로부터의 비판 여론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미국 없는 동아시아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한국과 일본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거나(핵비확산 포기)
코피만 흘릴 만큼의 외과수술적 타격을 감행하겠다거나(전쟁방지 포기)
방위비분담금을 인상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지역안정 포기)

등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발언을 여러차례 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2018년 6월 싱가포르, 2019년 1월 하노이, 6월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을 연기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등 동아시아에 전개된 미국의 군사력을 후퇴하는 행보를 병행했습니다.

즉,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전개하던 패권 질서를 일부 조정함으로써 핵비확산과 전쟁방지를 달성하겠다는 겁니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내 여론은 세계경찰로서의 미국보다 자국 이슈에 집중하는 지도자를 더욱 원하게 됐고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도 이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립주의 노선은 바이든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결국 진행했으니까요. 즉, 한국의 특정 정부가 한미동맹을 잘 했는가, 못 했는가와 같은 논쟁은 미국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다만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적 질서 재편 옵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직면한 안보적 위협이 외교적으로 해소돼야 합니다.

북측은 핵을 포기하더라도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미국은 북측이 더이상은 핵개발을 하지 않을 거라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군사력이 축소되더라도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관여 정책이 자국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는 신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에, 한국은 중재자로서 동아시아에서의 신뢰를 보증하고, 미국은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해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GSOMIA로 불리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각각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이 미완에 그친 채 몇 년이 흘렀습니다. 미중은 무역과 첨단기술 등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남중국해와 대만에선 군사적 긴장 상태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공급망 다변화 정책과 리스크 관리 간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한일 간에는 여전히 화해되지 않는 역사 문제가 남아 있으며,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 열도에서 영토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에겐 북에 납치된 민간인 이슈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즉,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부 후퇴하는 전략은 앞선 두 개의 선택지보다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충돌하는 이해관계 때문에 협력 모델이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적 질서 재편 옵션은 동아시아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안보-평화 구조를 만들겠다는 각 국가 지도자들의 담대한 의지와 외교적 역량 등에 따라 승패가 결정됩니다.

😰 아… 어렵네요. 지금 딱히 불편한 것도 없는데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되나요?

거듭, 북핵은 남북이 아니라 국제사회 차원의 문제입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전 지구적 이슈라는 거죠. 따라서 핵비확산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예방전쟁은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역시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자칫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로 확장된다면 한반도는 제3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반 잭슨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엔 미국 본토도 위협을 받으므로 어려운 선택일지라도 도박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글은 2017년에 쓰여졌고 이후 미국은 지역안정을 일부 포기하고 북측과의 협상에 배팅했는데요. 그때의 배팅은 불발됐지만 트릴레마적 상태는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변수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