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에 여섯분의 비밀요원님 그리고 박민희 한겨레기자님과 을밀대에서 점심 번개를 가졌습니다.

외교안보라는 관심사로 모인 만큼 요즘의 중국이라든지 이란・신남방정책 등 외교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쏟아집니다만 어느 비밀요원님이 제게 묻습니다. 샛별님은 평일엔 뭐하냐구요.

  공식 비밀작전이 나가는 주간엔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그렇지 않을 땐 오늘처럼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답했는데요. 집으로 돌아오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만남이란 격주 화목토마다 메일함으로 발송되는 비밀작전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점심 먹는 사이”, “평일에 뭐하는지 안부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됐구나.

델타 월딩은 정보성 뉴스레터가 아닙니다. 때문에 해외 언론사에 실리는 칼럼처럼 분량이 6~8천 자로 꽤 깁니다.

  또한, 이렇게 디렉터들이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모토 그대로,

“외교안보를 전공한 친구가 들려주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천편일률적인 양식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대로 가장 “나답게 하자.” 뉴스레터도 뉴미디어라면 기존의 문법과는 달라야지 않나 싶었습니다.

  저희들의 지난 20개월이 성실하게 쓰여진 오답노트일지라도, 오답노트가 존재함으로 인해 누군가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혁신을 시도할 수 있을 겁니다.

델타 월딩의 또다른 특징은 구독료를 받지 않고 외부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독료를 받으라는 제안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델타 월딩 유료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일 이코노미스트나 SCMP처럼 규모 있는 언론사로 성장한다면 대중교통 요금 정도(월 2,000원)를 받을 계획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외교안보는 ‘공익적 가치’를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외교안보 분야는 수요 이전에 공급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들이 전문가와 함께 캐쥬얼하면서도 조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좋은 일’이라면 세금이나 후원을 받아 운영돼야지 않는가라는 얘기도 곧잘 듣습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는 NGO 형태입니다만, 저희는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역시 국회에서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정치 성향과 관계 없이 무수의 시민단체를 폭넓게 다루며, 세금과 시민들의 후원금을 필요로 하는 단체들이 존재함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단체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정체가 불분명한 시민단체를 직접 취재하다 경찰서 유치장에 30시간 가량 갇혀 보기도 했으며, 시민단체는 아닙니다만 설립 목적이 변질되며 사회문제가 된 단체들을 파헤치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단체가 관성처럼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현실에 회의감이 커집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조롱에 반박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습니다. 게으르고 타성에 길들여진 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문법으로 새롭게 조각하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입니다만, 지난 20개월 간 비밀요원님들이 자발적으로 내어주신 후원금*이 총87만 원/8명이었습니다. 비밀작전 하단에 깨알같이 쓰여있는 계좌번호를 보고 보내주신 건데요.

  제가 오랜 기간 꾸준히 여러 단체에 후원해 온 입장에서 후원이 웬만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압니다. 후원에 기대어 지속가능성을 꿈꾸는 건 비현실적인 상상입니다.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남 모를 타인에게 돈 쓰기 쉽지 않은 시대에 델타 월딩에 기꺼이 후원금을 내어주신 비밀요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워 시작한 일입니다.

델타 월딩을 통해 세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든지 이런 얘기 할 곳이 없었는데 시에라 소사이어티 덕분에 안전하고 건강하게 나눌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말씀주실 때마다 정말 하길 잘했다 싶습니다.

  다만 20개월 차에 접어 들며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냉철하게 검토할 시기가 도래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에라 소사이어티의 참여율이 저희가 계획하고 목표했던 것보다 다소 저조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다소 떨어집니다.

  유료화의 저항이 이토록 높은 건가? 델타 월딩이 돈을 낼 가치가 없을 정도로 별로인가? 우리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일까? 시장이 애당초 작았던 것일까? 주식 때문에 앓는 소리가 많던데 그래서 지갑을 닫는 것인가?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무엇이든 델타 월딩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수장으로서 어느 시점엔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리더로서의 개인적 고충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거움과 달리 저희는 화기애애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핑크쵸코와 🔍갤갤은 본업을 병행하기에 매주 화요일 밤마다 온라인 기획회의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오프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데요. 지난 화요일엔 안국역 인근에 위치한 소온table에서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할 일 등을 논의하느라 여념 없습니다.

  저희의 원칙은 심플합니다.

  건강한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 노력합니다. 내가 즐거운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없는 것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내가 싫은 건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마음이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거룩함은 완전 삭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기에 시작한 일인 만큼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즐거우니 계속합니다만 시에라 소사이어티로 안정적인 BM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델타 월딩도 중단하는 날이 언젠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희들의 현존인데요.

  차를 마시며 🎱핑크쵸코와 🔍갤갤이 말하더군요.

“격주마다 메일함에서 꾸준히 만나던 사이에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말한다면 저는 상실감이 꽤 클 것 같아요. 우리끼리 고민하고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에요. 네 번째 세계를 향해 함께 가자라고 외치던 델타 월딩 가치에도 맞지 않구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는 표백된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재 당면한 어려움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마저 SNS에 넘쳐나는 전시된 행복을 팔 필요는 없을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고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는 게 🎱핑크쵸코와 🔍갤갤의 의견대로 델타 월딩을 책임지는 모습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가장 잘 하는 게 성실이라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내년에도 델타 월딩을 만들 수 있을진 자신 없습니다. 다만 공익적 가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겠다는 결의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 결과는 온전히 저희 몫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델타 월딩과 시에라 소사이어티는 건강한 조직을 지향합니다. 품격 있는 담론 공동체를 꿈꿉니다. 사적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소수의 비공식 호텔 조찬 모임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와 캐쥬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운영 상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20개월은 개인 사비로 유지해 왔지만 델타 월딩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비밀요원님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시에라 소사이어티를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번 기회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말 저녁에 유튜브를 보는 대신 살아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에의 즐거움을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시에라 소사이어티에선 뭘 하냐구요?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정치외교안보가 베이스지만 이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주어진 상황 앞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다른 원정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풍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시선을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시에라 소사이어티가 비밀요원님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진 않습니다. 지식을 향한 여정이 숨 쉬듯 쉬운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나누는 씽킹파트너가 있습니다. 함께 산행을 떠나며 힘이 되어주는 동료 원정대원이 있습니다.

  네 달의 시간 동안 지식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한 가지는 남습니다. 떨림은 있지만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아름다움. 딱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시에라 소사이어티에 있습니다.

오늘도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발송 계획이 없었지만 화요일 기획회의, 수요일 을밀대 번개를 치르며 책임이라는 단어가 가슴 속에서 증폭됩니다.

  단 한 명의 비밀요원님이라도 저희로 인해 상실감을 느낀다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시에라 소사이어티 시즌 2를 한 번이라도 고민했다면 델타 월딩에 투자를 하고 키운다는 마음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우리 서로에게 미안함이나 부담 같은 감정은 가지지 말았으면 합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만 건강하고 쿨하게 나눠요~

  그럼 불타는 금요일 즐겁게 잘 보내시고 다음 주 공식 비밀작전으로 만나요. 비밀요원님, 안녕!

🔍갤갤, 🧠별샛별, 🎱핑크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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