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일러리즘 방시혁 vs. 테일러-메이드 민희진

비밀요원을 위한 오늘의 외교안보 핵심! K-pop, 엔터에서 테크 산업으로 체질 전환 중~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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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시혁과 민희진의 시빌대전을 외교안보 전문 뉴스레터의 시각으로 분석합니다.

이번 사태는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흐름에 발맞춰 두 가지 쟁점이 숨겨져 있습니다.

①기승전‘빅테크’. K-pop이 엔터에서 테크 산업으로 체질 전환을 꾀합니다.
②한국경제가 세 개의 시장, 글로벌기업-대기업-중소기업으로 분리됐습니다.

😎 비밀요원님, 안녕하세요. 🧠별샛별이 인사합니다.

방시혁-민희진이라고 하니 지겨운 비밀요원도 있을 테고, 시비를 조목조목 가려주길 바랄 수도 있을 텐데요.

늘 그렇듯 델타 월딩은 누가 옳고 그른 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특정 개인과 조직 등을 향한 옹호와 비판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외교안보 전문 뉴스레터로서 이번 사건이 세계사적 흐름 위에서 어떤 위치성을 갖는질 분석합니다.

이같은 갈등은 엔터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의대 증원 사태나 사회연대임금제 이슈와도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규모와 강도만 다를 뿐 향후 한국사회 곳곳에서 빚어질 파열음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비밀작전은 델타 월딩을 만드는 별샛별의 개인 SNS에 업로드한 글을 좀 더 보강해 발행함을 안내합니다.

원글은 4월 26일 목요일 오후 3시에 진행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 전날에 작성됐습니다. 의견 교환은 매체 특성 상 인스타보다 메타에서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오늘 비밀작전 제목은 별샛별의 원글을 요약한 이욱신님 메타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묻는다면 유이하게 샤이니와 f(x)를 꼽습니다. 민희진 대표가 SM 재직 당시 비주얼 디렉터로서 주요하게 작업한 그룹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분석의 신뢰성을 해칠 거라 우려된다면 오늘 비밀작전을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델타 월딩이 주목한 건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뉴진스를 통해 실현하려는 K-pop의 비전이었습니다.

민희진 대표의 그림은 기자회견을 통해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자기충족적 나르시시즘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지언정 ‘내새끼’ 뉴진스를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제 색채와 감각으로 잘 만들고 싶은 겁니다. 테일러-메이드(Tailor-made), 한땀한땀 수공예 장인정신의 정점입니다.

또한 기자회견 내내 그는 그간의 아이돌 제작・소비・유통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는데요. SES・HOT 등에서 시작된 아이돌 산업도 어느새 25년에 이르렀습니다.

민희진 대표는 성숙기로 돌입한 K-pop 생태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아이돌을 프로듀싱하되, 자기만의 언어로 업그레이드하길 바랍니다.

이와 달리 방시혁 의장의 방향성은 모호합니다. BTS의 오랜 팬들은 방시혁과 하이브가 ‘돈만 밝히는 비지니스 집단’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 오고 있었는데요.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현재 하이브는 더 적은 품을 들이고 더 오래,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전환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K-pop이 그동안 사용해 왔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방시혁 의장은 하이브를 엔터에서 테크 산업으로 체질을 완전히 뒤바꾸길 원합니다.

하이브는 기존의 대형 엔터 3사, SM・JYP・YG와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우선, 아이돌 양성 기간은 물론 그룹 간 데뷔 간극이 상당히 짧습니다. 이번 갈등의 한 요소인 아일릿은 뉴진스 데뷔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세상에 나왔습니다.

르세라핌이나 이외 남성 아이돌까지 포함하면 하이브는 2019년 이후 6년 동안 아홉 개의 아이돌 그룹을 출시했습니다. 5~7년 걸려 연습생을 훈련하고 3~5년 단위로 그룹을 데뷔시키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패턴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멀티 레이블(자회사) 체제 덕분입니다. 하이브는 BTS를 만든 빅히트뮤직만이 아니라 쏘스뮤직(르세라핌), 어도어(뉴진스), 빌리프랩(아일릿), 플레디스(투어스) 등을 멀티 레이블로 거느립니다.

또한 하이브는 미국・일본・라틴 아메리카에도 현지 법인을 설립해 시장 특성에 맞는 아티스트를 양성하거나, 2차・3차 비지니스를 창출합니다.

즉, 하이브는 현재 K-pop 산업을 과거의 장기 육성형에서 탈피해 공장에서 포드 자동차를 찍어 내듯 단기 양산형으로 전환을 꾀합니다. 오늘 비밀작전 제목 그대로 테일러리즘(Taylorism)인 거죠.

멀티 레이블은 이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시스템입니다. 자회사 간 경쟁을 통해 상품 생존력을 높이거나, 시장에서 유의미한 반응을 얻지 못하면 상품을 폐기하는 데에도 유용합니다만 최종 목표는 이것입니다.

하나의 레이블에서 만들어진 성공 방정식을 다른 레이블에도 빠르게 변형・이식하여 확산

르세라핌과 아일릿의 가창력 논란이라든지 아일릿에 제기된 뉴진스 카피캣 의혹은 단기 멀티플 대량생산 체제에선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품을 덜 들이고 더 많이, 더 오래 이익을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니까요.

만약 이 모델이 계획대로 작동한다면 하이브는 K-pop의 넷플릭스화를 꿈꿔볼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 제작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해당 작품에 넷플릭스 시리즈를 라벨링해 공개하듯이 하이브 역시 전 세계 엔터 기업과 프로듀서들에게 제작 노하우를 이식한 후 하이브 시리즈로 발표하는 겁니다.

하이브가 지원하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글로벌 팬덤을 보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당 국가와 문화권에서 소구력을 갖춘 그룹 몇 개만 확보해도 글로벌 단위로 수익을 실현하는 건 변함 없으니까요. 오히려 이 모델은 문화 차이나 외교 갈등으로부터 촉발되는 갖은 반목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리스크를 줄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많은 돈을 벌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이브만의 또 다른 특이점은 주요 경영진에 네이버・넥슨・NC소프트 등 IT기업 출신이 많다는 점입니다.

2010년 후반 들어 급성장하던 하이브가 제조・유통업에서 외부 인력을 충원하기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엔터 업계에서 성장했던 이들이 아니라 업계 바깥, 특히 IT 출신을 기용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합니다.

왜 때문일까요?

실마리는 2019년에 등장한 위버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위버스는 K-pop 아이돌에 특화된 플랫폼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곳에서 아티스트와 DM을 주고 받기도 하구요. 특별한 콘텐츠를 시청하거나 굿즈를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하이브는 일찍이 K-pop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돌을 양성해 앨범을 내고, 글로벌 콘서트를 진행하고, CF 출연 및 굿즈 판매 등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게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거죠.

헤게모니라는 웅장한 용어를 사용하면 영국락에서 미국팝, J-pop, 힙합 등으로 대중음악의 헤게모니가 계속해서 바뀌어왔듯이 지금의 K-pop은 또다른 헤게모니로 대체될 일만 남았습니다.

과거에 미국팝과 J-pop을 듣고 성장한 이들이 현재 K-pop을 만드는 주역이 된 것처럼, K-pop의 주 소비층인 해외 팬덤이 영원히 소비층으로만 남아 있으리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내부에선 아직은 K-pop 아류라 칭해질 지라도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내수씬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의 데뷔를 꿈꾸겠지만 비밀요원님이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실 테죠. 2050년이면 국가 별 인구규모나 GDP 순위 등이 지금과는 크게 뒤바뀝니다.

이를 테면 2016년 기준 GDP 순위 8위였던 인도네시아가 2050년이면 일본을 밀어내고 4위에 오릅니다. 반면에 2016년에 13위였던 한국은 2050년이면 18위로 떨어집니다.

아세안-인도-사우디(및 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을 ‘글로벌 사우쓰(남쪽국가)’라 부르며 국제사회가 앞다퉈 달려가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크게 타격 받는 건 문화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경제가 신장되어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데 주력합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과거사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G10 규모로 경제력이 커지며 국가 정체성 확립에의 요구가 높아진 결과입니다.

다만 정체성이라는 건 형태가 없는 무형의 산물인데요. 이를 가장 직관적이고 유통되기 쉽게 담아주는 그릇이 문화 상품입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경제력 신장 및 중산층 두터워짐. → 정체성 확립에의 요구 커짐. → 자국 문화 상품에의 니즈 상승

지난 2월에 보내드린 인도네시아 대선 비밀작전에서 이렇게 설명한 바 있죠.

인도네시아 중산층 빠른 속도로 증가
현지 브랜드 선호도 높으며 민족주의 정서 매우 강함.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라 한국도 이미 경험한 보편적 현상입니다. 때문에 미래를 단언할 순 없지만 2050년에도 K-pop을 비롯한 K-콘텐츠가 지금과 같은 헤게모니를 유지하리라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엔터 산업은 자본・인프라든지 기획력과 별개로 아티스트라는 인적 자원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근원적 불안정성이 큽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에도 우리가 바랐던 일들은 아니지만 온갖 커뮤니티가 들썩일 정도의 연예계에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죠.

AI 아이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의 경쟁・반목만으로도 벅찬데 그보다 더 ‘갓벽한’ 인공지능과도 수익을 쪼개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제시할 수 있지만 하이브는 엔터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콘텐츠와 테크를 결합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직조”하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신호탄이 위버스입니다.

위버스는 겉보기엔 굿즈를 구매하거나, 아티스트-팬덤 간 커뮤니케이션 채널이지만 실질적으론 데이터 수집 창구로 기능합니다.

렌즈를 살짝 돌려 이렇게 얘기해 볼게요.

이제와 페이스북・인스타(메타), 유튜브(알파벳/구글), 틱톡, X(트위터)같은 대중적 SNS라든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모든 걸 사고 파는 전자상거래 업체를 만들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엔터 산업에 특화된 플랫폼 구축은 BTS 글로벌 팬덤만 동원해도 최소 천만 명은 확보 가능합니다.

물론 BTS라는 남성 아이돌만으론 전체 엔터 산업의 데이터를 아우르기엔 역부족입니다. 때문에 르세라핌・뉴진스 등 여성 아이돌을 데뷔시키구요. 국가 별 특화 아이돌을 제작하거나 2차・3차 비지니스도 추진합니다. 앞서 말했듯 하이브는 하이브 USA에 이어 하이브 재팬, 하이브 라틴아메리카를 설립했습니다.

이렇듯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과 공장형 양산 체제로 아이돌을 단기간에 계속해서 데뷔시킵니다. 데이터를 글로벌 단위로 촘촘하게 수집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AI.

지난 3월 21일, 미국의 디씨인사이드라 칭해지는 레딧(reddit)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습니다.

기업가치는 약 8.6조 원으로 하이브와 비슷한데요. 그럼에도 결정적 차이는 현재의 하이브는 끊임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팔아야 이익을 실현할 수 있지만 레딧은 월간 활성 이용자수 4억3천만 명이라는 ‘고객 집단’을 등에 업고 8.6조 원을 인정 받았습니다.

게다가 레딧은 알파벳(구글)과 2억 달러(약 2,700억 원)의 데이터 라이센싱 계약을 맺었습니다. 생성형 AI 개발 시 필요한 대규모 언어모델에 레딧 데이터가 사용되는 것입니다.

데이터가 돈이 되는 세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레딧처럼 데이터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자사 AI를 개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실제로 챗GPT를 출시한 오픈AI+MS와 더불어 생성형 AI 개발의 선두주자로 오르내리는 테크 기업은 거대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메타, 알파벳(구글), 아마존, 네이버 등입니다.

AI 개발에 필요한 잠재 자산 보유 여부로 기업가치가 달라지는 건 레딧만이 아닙니다.

테슬라마저 전기차의 가치는 22%에 불과합니다. 테슬라 주가의 78%는 슈퍼컴퓨터 도조를 비롯해 인공지능・로봇 등에 달려 있다는 보고서를 모건 스탠리가 작성했으며,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지분 25%를 보장하지 않으면 AI 사업의 중심을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고 압박할 만큼 요즘 테크 업계의 화두는 기승전AI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방시혁-민희진에서 AI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하이브는 AI 시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2021년이었죠.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를 재현해 주목받았던 ‘수퍼톤’이라는 AI 오디오 전문 기업이 있는데요. 하이브는 2021년부터 23년까지 714억 원을 투자해 지분 56.1%를 취득했습니다.

엔터 업계로선 수퍼톤만 있으면 성공에의 리스크가 큰 아이돌을 더더욱 5~7년 걸려 육성할 인센티브가 줄어듭니다.

콘서트를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고관여 팬덤이 아니라 리스닝 수요 집단에겐 고인이 됐거나 이미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활동하기 어려운 가수들의 목소리만 신곡으로 재현해도 고정 수익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영화・드라마・게임 등에서의 더빙을 비롯해 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서비스라든지 가상 아이돌 제작까지도 뻗어갈 수 있습니다.

즉, 위버스 데이터를 활용해 자사 AI 개발 및 서비스로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하이브가 그리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이브가 이같은 비전, 즉 K-pop 산업을 엔터에서 테크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한지 아직 5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급속도로 빠른 기간에 성장하며 자회사를 포함해 임직원이 천 여명으로 늘어나면서 조직 간 반목도 불가피합니다.

그만큼 연매출이 2018년 3,000억 원에서 2023년 2조 원으로 7배 가량 늘었다지만 막상 영업이익은 신통찮습니다. 2018년 799억 원에서 2023년 2,958억 원으로 3.7배 증가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하이브는 2021년에 만기 5년 짜리 4,000억 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2026년 10월에 4,000억 원을 현금이든 주식으로든 갚아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2023년 말 기준 하이브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3,579억 원입니다. 또한 하이브의 유동비율이 급감하며 2023년엔 106.58%까지 떨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현재의 하이브는 월급은 들어왔지만 카드값으로 모두 빠져나가는 월급쟁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큰 그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멀티 레이블 등에 투자도 중단할 수 없기에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면 전환사채 만기일인 2026년엔 자칫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BTS가 2025년에 제대해 다시 왕성히 활동하고, 뉴진스를 비롯해 여타 아이돌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실현하고 AI 음성 서비스도 상용화된다면 별 문제 없을 일입니다. 본디 투자란 미래의 기대수익을 위해 지금 빚을 지는 행위니까요.

그러나 현재 뉴진스가 위기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하이브는 어도어 경영진이 작성한 한 건의 카톡 대화록과 세 건의 내부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이브를 빠져나간다, 하이브의 죄악, 프로젝트 1945

다소 컬트적인 문건 이름과 내용들을 두고 여론은 “그게 계획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하지만 이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건 오히려 하이브입니다.

뉴진스가 지금처럼 삐걱거리고 르세라핌이나 아일릿 등의 이미지가 훼손되어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게다가 하이브가 테크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실현할 곳보다 투자할 곳만 계속 늘어난다면 이미 발행된 4,000억 원의 전환사채 만기일인 2026년 10월이 다가올수록 애가 타는 건 정작 하이브니까요.

공개된 대화록에서 어도어 경영진이 2025년 1월 2일에 풋옵션을 행사해 엑시트를 하겠다는 건 상당히 합리적인 계산입니다.

뉴진스의 연이은 성공으로 기업가치가 가장 높을 때 어도어 지분을 일부 팔고 나오면 민희진 없는 뉴진스로 인해 어도어의 기업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이브는 2026년 만기 채권으로 유동성 위기마저 맞닥뜨리게 되면 어도어 지분 매각을 고려하게 됩니다.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 혹은 민희진 대표는 어도어 지분을 싼값에 매입할 수 있으며, 민희진 대표는 어도어로 복귀해 뉴진스 등 관련 사업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어도어로 복귀하면 경업금지 조항도 유명무실해집니다.

하이브가 초기에 콕 집어 하이브 재무부서에서 IR을 담당했던 L모 어도어 부대표가 하이브의 재무 정보와 계약 사항 등을 유출했다고 밝힌 건 그만큼 핵심 정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와 달리 하이브의 재무 구조가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든지, 어도어 경영진이 뉴진스 탈취 계획을 세운 게 맞는지, 누구 말이 더 맞는지 여부는 델타 월딩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길을 끈 건 어도어 경영진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사우디공공투자기금(PIF)입니다. 이들은 지난 해 1~3월이었죠. SM 인수전에 뛰어든 카카오엔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곳들입니다. 아무 맥락 없는 자본이 아니라 한국 엔터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있습니다.

즉, 어도어 경영진의 계획이 전혀 허무맹랑한 시나리오인 건 아닙니다.

요즘 콘텐츠 업계는 웹툰-웹소설은 물론 영화・드라마 시장도 위축됐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틱톡으로부터 촉발된 숏폼 콘텐츠(릴스・숏츠)로 인해 5분도 아닙니다. 콘텐츠 길이가 2분만 넘어가도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습니다. 또 하나는 넷플릭스와 같은 대형 OTT 플랫폼에 모두 빨려 들어갑니다. 과점을 뛰어 넘어 독점의 시대로 나아가는 중인데요.

때문에 투자 업계에선 성과가 명징한 상품들로 자본이 더욱 몰립니다. 특히 유아 관련 프로덕트는 인기가 높습니다. 자녀에게 돈을 쓰지 않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으며, IP 하나를 잘 키우면 원소스멀티유저도 가능합니다.

아이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의 아이돌 생태계는 반려아이돌이라 불릴 정도로 ‘내새끼’ 정서가 강합니다. 에스파라는 그룹의 멤버 카리나는 연애 사실이 공개되자 분노한 팬들로부터 집중 항의를 받고 자필 사과문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결국 연인과의 이별을 선택했는데요. 이때 팬들의 반응은 유사연애의 감정이라기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를 배신해?”라는 정서에 가깝습니다.

VC들로선 유아 프로덕트와도 공통 분모를 갖는 아이돌 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아이돌 산업은 글로벌 단위로 수익을 실현합니다. 한국에선 저출생・인구고령화로 홍역을 치르지만 전 세계적으론 인구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유아 프로덕트만큼이나 아이돌 수요도 큽니다. 덕분에 투자 자금마저 글로벌 단위로 뛰어 오릅니다.

비밀작전 앞단에선 K-pop 산업이 엔터에서 테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여기서 두 번째 쟁점이 드러납니다.

지난 날의 한국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이중구조로 작동됐다면 2010년대 중반부터 등 뒤에서 서서히 글로벌기업이라는 삼중구조로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외국계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라든지, 해외로 나가 글로벌기업에 취업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진 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자본 역시 글로벌 단위로 움직임에 따라 이전에 없던 새로운 파열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 사태가 대표 사례입니다.

의사들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과는 기피하고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및 정신건강·재활·영상의학과 등에 몰리자 의대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2,000명을 늘려 최소한의 필수과 의사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의사 공급이 과마다 불균형해진 이유는 의료 수가, 실손보험의 도덕적 해이,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게 요구되는 외모 기준 등 여러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한국의 피부·성형이 더 이상 내수시장만으로 운용되지 않음도 주목해야 합니다.

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ISAPS)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 기준, 한국의 미용・성형 시장 규모가 14조 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다만 시술 대부분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정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참고해 주시구요.

외국인이 한국에서 피부・성형에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은 하나카드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만 1,3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로서 현금을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의 피부・성형 산업은 사회적 압력과 자기 만족이 결합된 내국인 여성들의 니즈가 한축이라면 외국인 의료 관광객도 또다른 축으로 기능하며 내수와 글로벌이라는 이중구조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내수 의존도가 높은 필수과 의사들의 급여를 피부・성형에 맞추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피부・성형 의사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하방구조를 깨기도 쉽지 않습니다. 글로벌 시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피부・성형만이 아니라 의료 전 부문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합동TF팀을 꾸리고 웰니스・의료관광 융복합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에도 매진합니다. AI 헬스케어 산업도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죠.

세상 만사 계획대로 다 되는 건 아니기에 목표 수익을 실현하는 데엔 시차가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건 의료계라고 이젠 모두 같은 의료계가 아닙니다. 글로벌 단위로 도약가능한 잠재 요소를 갖고 있는지 여부로도 희비가 교차합니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시장으로 커지며 뒤따르는 진통은 노동 부문에서도 드러납니다.

410 총선 당시 조국혁신당은 ‘사회연대임금제도’를 공약으로 발표했습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대기업-중소기업 간 노동자 임금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면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인데요.

대기업 역시 더 이상 모두 같은 대기업이 아닙니다. 반도체와 AI 등 첨단 기술을 직접 개발・제조하거나 관련 기술을 활용하는 대기업은 상품의 수요만이 아니라 핵심 인력도 글로벌 단위로 움직입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실리콘밸리를 꿈꾸듯이 국내 기업도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보상체계로 내세워야 합니다.

이와 달리 대기업은 대기업이지만 초첨단 기술을 두고 다투는 분야가 아니라면 급여를 글로벌 단위로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은 대기업・정규직-중소기업・비정규직 간 이중 노동시장이라는 이슈에만 주목했지만 앞으로는 대기업 간에도 글로벌과 비글로벌기업으로 나뉘며 노동자 간 급여체계가 크게 벌어집니다.

때문에 사회연대임금제도는 의대 증원 사태 당시 의료계가 집단 사직에 들어간 것처럼 글로벌 단위로 성장한 기업 노동자는 해외 이직을 무기로 내세우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자칫 기술안보의 위기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제도의 당위와 필요성과 무관하게 한국이 글로벌기업-대기업-중소기업이라는 세 개의 시장으로 분리된 결과입니다.

방시혁-민희진 혹은 하이브-어도어 사태도 이와 비슷합니다.

현재의 하이브는 지난 날의 SM・JYP・YG와는 방향성도 성격도 완전히 다릅니다. 하이브는 K-pop을 엔터에서 테크로 산업 패러다임을 전환 중에 있습니다. 첨단 기술의 중추에 서 있는 건 아니지만 위버스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AI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기업 규모도 글로벌 단위로 커졌습니다. 전략대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아이돌 그룹의 단기 대량생산 체제가 중단 없이 유지돼야 합니다. 비밀작전 제목 그대로 테일러리즘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이브의 핵심 휴먼 IP 중 한 명인 민희진 대표의 가치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그의 경쟁력은 하이브가 선택한 전략과 반대로 테일러-메이드에 있습니다.

어도어 지분 18%를 보유한 민희진 대표의 가치는 최소 천억 원에서 많게는 4천억 원으로 추산되는데요. 계약서를 둘러싼 시비는 법정에서 다투면 될 일지만 사실, 개인 가치가 이토록 짧은 기간에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일을 그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로부터 어도어 지분 18%를 11억 원에 매입하던 2023년 초에 방시혁 의장과 채무관계가 생겼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죠.

SM도 엔터 업계의 대기업입니다. 민희진 대표는 SM에 20년 간 근무하며 샤이니와 f(x), 레드벨벳 등 글로벌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디렉팅을 담당했습니다. 브랜딩 실력을 높이 평가 받아 하이브로 이직했습니다. 지금 그의 가치는 앞서 말했듯 최소 천억 원 단위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엔 11억 원이 부족해 자금 일부를 타인으로부터 빌려야 했습니다.

대기업과 글로벌기업의 간극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비밀요원님, 오늘도 긴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듭 오늘 비밀작전은 시비를 다투거나 특정 개인과 조직 등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번 사태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여러 시사점을 던져 주는데요.

델타 월딩은 외교안보 전문 뉴스레터입니다. 미중 첨단 기술을 두고 경쟁하고,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이 겪고 있는 내홍을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한낱 잉여들의 집합소로만 여겨졌던 레딧이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가치가 8.6조 원으로 인정 받습니다. 동일 직종이라도 글로벌 단위로 도약할 요소를 갖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희비가 교차합니다.

이런 흐름 위에서 K-pop의 미래 비전에 대해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갈등입니다. 동시에 한국경제가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아닌, 글로벌기업으로까지 고도화되며 보상체계를 둘러싼 분쟁도 필연입니다.

이같은 파열음은 규모와 강도의 크고 작음은 있을 지언정,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 받는 전 부문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이것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맞닥뜨렸을 뿐인데요.

역시 문화 상품은 한 나라의 정체성을 직관적이고 유통되기 쉽게 담아 주는 그릇입니다. 덕분에 역동이라는 대한민국의 초상이 좀 더 또렷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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