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뉴욕 증시가 2년 만에 최대로 하락했습니다.
- 미 노동부가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발표했는데
-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떨어졌음에도
- 기대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비밀작전에서 델타 월딩은, 바이든 정부의 3대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했습니다.
- 재정 지원을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 궁극적으로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이지만
-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는 건데요.
증시 하락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거는 기대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금리도 예상보다 더 오를 거라는 전망이 제시되면서,
- 기업 경영이나 투자 활동 등으로 얻는 수익보다 채권이나 현금을 보유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클 거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 결과 미국의 금융시장이 요동쳤습니다. 즉,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주는 요술방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 분석에 따르면 물가가 안정화되기까진 최소 2~3년이 걸린답니다.
- 그래서 실업률을 강제로 끌어 올리는 방안도 제시되지만 이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 코로나 팬데믹 동안 전염을 염려하며 구직을 포기한 노동자는 급증한 반면 이민자수는 감소하면서 노동시장은 지금도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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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억 명의 인구로 구성된 미국은 ▲인플레이션 억제, ▲중산층 재건, ▲첨단기술 산업 전략적 육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현재 껴안고 있습니다.
거듭 요술방망이란 없습니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인데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8월 9일에 발효된 「반도체 산업육성법(CHIPS Act)」과 패키지로 묶이어 미국의 전략물자법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들 법안은 반도체・보건・청정에너지 관련 산업을 해외가 아니라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할 것을 강제합니다.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며 미래전략 물자의 자국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이 자국 산업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며 자유시장경제를 교란한다고 비판해왔지만, 지금은 중국과 다를 바 없이 미국우선주의와 신쇄국시대로의 전환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무역갈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글로벌 공급-수요망의 균형이 깨지고, ▲노동시장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 게 제일 큽니다.
러시아에 가해진 제재나 미중 무역갈등이 일부 완화된다면 인플레이션 문제는 빠르게 해소될 가능성‘도’ 있지만 안보 이슈도 있거니와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에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 재건이라는 과제는 꽤 높은 순위에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잔인한 진실이지만 거의 모든 국가의 정책 결정 최우선 고려 대상은 ‘중산층’입니다.
평균 수준의 자산을 보유한 중산층은 인구의 50~70%*를 차지하며 가장 파워풀한 노동력과 구매력을 과시하고, 정치・사회・문화에서도 여론을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OECD 기준, 중위소득의 75~200%에 위치
또한 중산층이 두터울수록 양극화 정도는 감소하고 사회통합의 효과가 커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부는 중산층의 서민화를 막는 등 중산층 지원 정책을 적극 펼칩니다.
지난 8월 24일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최대 4,300만 명이 1인당 최대 2만 달러(약 2,700만 원)까지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을 덜게 되는데요.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이들보다
-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은 11%
- 학사 학위는 65%
-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 학위는 138%
가량의 임금 프리미엄을 가진다는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중산층 재건의 효과가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은 혜택의 69%가 소득 상위 60% 즉, 중산층에 더 크게 돌아갑니다.
참고로 미국 고교 졸업생이 곧바로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2018년도엔 70%였지만 2020년은 63%로 떨어졌는데요. 이유는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다 만 이러한 재정 직접 지원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엔 미미합니다.
거듭 요술방망이란 없습니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안녕하세요, 비밀요원님! 🔍갤갤이 인사합니다. 그동안 일본, 한국, 미국의 현재를 톺아 봤는데요. 마지막 순서입니다. 오늘은 중국을 딥다이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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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하버드 연구진(’14)에 따르면 중국은 당을 비판하는 글이 온라인에 게시되더라도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 최고 지도자를 향한 가장 독설적인 글도 검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
온라인에서의 격렬한 비판은 일상적으로 허용됩니다. 어떤 관리가 부패했고 교체해야 하며, 어떤 정책을 지속하고 폐기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만 예외입니다. 집단행동의 가능성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인기 있는 정책이나 좋아하는 정치인을 위한 집회일 지라도 집단행동을 암시하는 글은 반드시 삭제됩니다.
즉, 집단행동의 잠재력만 없다면 어떤 글도 중국 본토 내에서 자유롭게 온라인에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신장 위구르나 티벳에 관한 것일지라도 집단행동만 아니면 제약이 크지 않습니다.
물론 수만 명의 검열관들이 게시글을 모니터링하거나, 정부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땐 키워드 필터링을 거친다든지 몇몇 사이트는 접속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제도적 억압임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와 중국공산당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제2의 “문화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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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중국을 마오쩌둥의 나라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그들은 마오의 위상은 갖고 싶어하지만 마오의 열정은 경계합니다: 지난 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역사상 세 번째 결의문에서 “문화혁명”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중국에서 마오는 1945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지도자로서만 유산과 업적을 가집니다.
이후 일어난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등은 마오의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실수”로서 그 책임이 마오에게 있음을 분병히 밝힙니다. 제때 바로잡지 못한 당 또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1966년부터 10년 간 이어진 “문화혁명”은 중국에 가장 심각한 후퇴와 손실을 가져온 혼란이자 과오로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금 벌어지는 것에 대해 집단적 트라우마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오가 중국공산당의 상징 자산으로서 점차 신격화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부격차와 양극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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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태자당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혁명 원로였지만 그가 8살이던 1962년, 반당 인사로 낙인 찍혔습니다. 중국은 과거 국공내전의 트라우마로 다당제를 거부하는 원칙이 자리 잡혔기에 사실상 사망선고와 다름 없었습니다.
4년 뒤 발발한 “문화혁명” 때에도 온 가족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누나는 반동의 딸로서 홍위병에게 두드려 맞다 자살을 했고 그도 15살이던 1969년, 산시성으로 하방을 당해 7년 간 고된 노동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극적으로 뒤바뀐 건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 1978~9년 무렵이었습니다. 덩샤오핑도 “문화혁명” 당시 핍박을 받았기에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공산당 원로들을 다시금 정계로 부른 것입니다.
칭화대를 갓 졸업한 그의 첫 이력은 국방장관 비서*였습니다. 25살의 당원이 가기엔 높은 자리로서 아버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다만 선대의 후광을 등에 업은 태자들의 수가 수천 명에 이릅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실 비서
즉, 14억 인구 중에선 선택 받은 소수이자 플래티늄 수저지만 그들 간에는 차원이 다른 경쟁이 벌어집니다. 오히려 그는 존재감이 없었고 태자당에서 가장 주목 받은 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보시라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서기이자 국가주석으로서 최고 지도자에 오른 건 보시라이가 아닌 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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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보통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 마오쩌둥
-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
- 시진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당시 무너진 당내 민주주의를 집단지도체제로 복원하고, 최고 지도자는 10년 단위로 교체한다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1인독재의 씨앗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만큼 중국에게 “문화혁명”과 ‘혁명적 낭만주의’로서의 마오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덩샤오핑 이후 최고 지도자의 권력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으로 승계됩니다. 이들은 아래처럼 각기 다른 계파에 속하며 당내 긴장과 균형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 (장쩌민 - 상하이방) 상하이의 정치・경제력을 발판으로 함.
- (후진타오 - 공청단) 중국공산당 입당 전 거치는 청년 조직(중국공산주의청년단)
- (시진핑 - 태자방) 혁명 원로 후손들의 모임
일본 자민당이 보수 본류・방류로 나뉘며 다양한 파벌이 경쟁하는 것과 흡사한데요. 당연한 얘기지만, ‘갈등 ’이라는 조직의 기본 속성은 민주주의든 독재체제든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2000년대 말엽, 상하이방과 공청단은 다음 최고 지도자를 선정하는 문제로 다툼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합의된 인물이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태자당의 그였습니다.
보시라이는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높았지만 당의 원로들은 오히려 그 점을 우려했습니다. 대중들을 동원해 제2의 “문화혁명” 혹은 그에 준하는 운동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전지대라는 이유로 선택된 그는 현재 마오와 동등한 위상으로 다뤄집니다. 10년 단위 승계를 무력화하고 종신 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당이 합심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그가 중국공산당의 1인 지도자로서 권력이 점차 강화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부격차와 양극화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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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공산당원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흔히들 중국 정치를 상하이방・공청단・태자방 간의 파벌 다툼으로 풀이합니다. 이는 그가 최고 지도자에 오른 배경을 설명하기엔 유용하지만 실제 중국 정치의 역동성과 현재 중국이 풀어야만 하는 퍼즐을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미국은 연방제・국제주의・총기・낙태・이민자 등의 이슈가 정치적 입장을 가르는 주요 키워드입니다.
- 일본은 평화헌법과 자위대, 주일미군(미일동맹) 등이 핵심 변수였습니다.
-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이르는 방법론이 가장 큰 쟁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개혁・개방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 6월 4일에 발발한 천안문 광장 유혈 강제 진압 사건(the bloody Tiananmen Square crackdown, 1989)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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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이후 중국은 경제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1988년엔 베이징의 소비자물가가 30% 이상 오르는 등 인플레이션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재정 긴축 정책을 취하자 실업률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더욱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 시민사회에선 정치・사회적 민주화와 더욱 급진적인 경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졌지만
- 당 지도부에선 공산주의적인 방식(좌파-보수)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후자들은 마오의 “문화혁명 ”을 추종하는 건 아니지만 개혁・개방의 속도를 늦추고 중앙정부가 다시금 경제를 통제하길 원했는데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한 동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으레히 나타나는 복고적 현상이지만, 보다 많은 자유를 바라는 청년들의 요구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압력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경제성장과 빈부격차 해결이라는, 그러나 합일되지 않은 다층적 목소리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습니다.
- (방향) 절대빈곤에서 탈출한, 부유한 중국 vs. 모두가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그 시절
- (경제) 더욱 빠른 개혁・개방 vs.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
- (정치) 집단적-일당독재체제라는 대원칙 vs. 정치・사회적 민주화와 언론 자유
- (트라우마) “문화혁명”과 유사한 집단행동
2001년에 공개된 당시 기록물에 따르면 덩샤오핑의 우선순위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선택이 유혈 진압으로 이어지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당 내에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은 < 덩샤오핑 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이들 학생 세대는)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 영도자들이 자신들의 애국적 열정과 고상한 생각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도자들과 이야기하면 국가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이 정당하다고 동감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p.822)
어떤 이유에서든 시민을 유혈로 진압한 행위는 옹호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문화혁명”의 트라우마가 천안문 광장으로 이어지며 이후 청년세대들에겐 교훈 아닌 교훈 한 가지를 남겼습니다. “국가 영도자들에게 직접 대항할 경우 폭력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불필요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p.823)이었죠.
중국공산당은 1989년 천안문 광장 유혈 강제 진압 사건을 공식적으로 ‘정치적 혼란(political turmoil)’이라 규정합니다만 무엇이라 부르든 문제의 근본인 빈부격차 즉, 개혁・개방의 명암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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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얼마 후 덩샤오핑은 장쩌민에게 권력을 넘기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천안문 광장 유혈 강제 진압 사건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며 서구 민주주의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고 자유의 적으로도 간주됐습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금세 잊혀질 것이라 여겼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오히려 복병은 개혁・개방의 속도를 늦추고 계획경제를 바라는 이들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쩌민-후진타오로 이어지는 동안 개혁・개방 정책은 계속해서 유지됐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힘을 잃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거듭, 근원적 문제인 빈부격차는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기만 합니다.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중국식 사회주의를 앞세우는 국가의 웃지 못할 아이러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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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마오를 넘어서려는 절대 권력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흔히들 중국 경제를 국가주도성장 즉, 중앙에서 모든 걸 계획하고 통제한 결과라고 인식합니다. 1978년 이후 30년 동안 GDP의 40%를 국영기업이 차지했다는 점에선 연관성이 높아 보이지만 당내 보수주의자들이 개혁・개방파에 갖는 불만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특성 상 중앙에서 모든 걸 통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습니다.
중국인구는 1978년 기준 9.5억 명, 2020년 14억 명으로서 전 세계에서 인구수*가 제일 많습니다. 국토면적은 러시아・캐나다・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넓습니다.
*미국은 3.3억 명으로 3위
중국을 나누는 가장 큰 행정구역은 22개의 성, 4개 직할시, 5개 자치구, 2개의 특별행정구로서 인구로나 면적으로나 이들 하나하나는 웬만한 국가에 맞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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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약을 뛰어 넘기 위해 개혁・개방 당시 중국공산당은 지방정부에 상당한 자치권과 경제적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중국식 연방제라고도 부릅니다만,
- 지방정부는 자율성을 부여받은 만큼 다양한 정책 실험을 추진할 수 있고, 성공한 정책은 전국 단위로 뻗어 나가는 것은 물론 해당 간부는 중앙당으로 승진하여 올라갑니다. 일종의 인센티브인 거죠.
- 여기에 자극을 받은 다른 지방간부들은 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모방과 경쟁이 이뤄지고, 실제로 연안에 위치한 지방정부들이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개혁・개방 정책이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장쩌민은 상하이 시장, 후진타오는 티베트자치구 당서기 그리고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몇몇 남부와 상하이 당서기 등을 지내며 능력을 인정 받으며 중앙에 발탁됐습니다..
다만 제도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치권과 자율성만 커지다 보니 ‘꽌시(關系) 문화’와 부정부패가 비지니스의 관행이 되고, 소수에게 부가 독점되는 폐단이 발생합니다.
천안문 사건 당시 당내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잠시 커졌던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경제성장을 늦추더라도 중앙의 강력한 통제 하에 빈부격차를 먼저 해결하자는 겁니다.
인센티브에 길들여진 지방정부(간부)들로 인해 과거로 돌아가긴 어렵습니다만,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수면 아래에선 마오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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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빈틈을 발 빠르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치고 나간 건 다름 아닌 태자당의 보시라이였습니다.
2007년입니다. 인구 3,200만 명의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하면서 보시라이는 부정부패 해소, 조직폭력배 소탕, 임대 아파트 확대 보급 및 고급주택엔 특별세를 부과하는 등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나아가 보시라이는 스스로를 마오와 비슷한 이미지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충칭시 대학생들을 “문화혁명 ” 당시 하방을 연상시키는 사회현장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케 한다든지 , 혁명 관련 다큐와 영화 등을 방송국의 황금 시간대에 편성토록 지시키도 했습니다 .
그럼에도 최고 지도자에 오른 건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던 보시라이가 아니라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는 그였습니다. 보시라이로 인해 “문화혁명”에 준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최근 행보는 보시라이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2018년, 전 세계적으로 이슈였던 판빙빙 실종 사건도 연예계에 만연했던 탈세와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집권 9년 동안 부정부패 혐의로 처벌받은 관리직은 374만 명이라고 하는데요. 개인권력 강화가 목적이더라도 부정부패에 강도 높게 대처하는 건 보시라이와 비슷합니다.
마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초기엔 당내 보수주의 원로들로부터 대대적인 비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취임 후 첫 지방 방문지로 선택한 곳이 마오를 비롯해 과거 혁명동지들의 유적지가 아니라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신을 강조했던 선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날의 보시라이가 그러했듯 지금의 그는 자신의 위상을 마오와 동등하게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10월 16일 열릴 제20회 당대회에서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사실만으로 그가 “문화혁명 ”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외설적이라고 평가합니다. 현재 중국공산당 내 주류 세력인 개혁・개방파가 마오와 “문화혁명”에 갖는 두려움은 천안문이라는 비극적인 경험으로 이미 잘 드러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화혁명” 발발 가능성의 두려움으로 보시라이를 경계했던 중국공산당이 15년 전 보시라이의 전략을 따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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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연평균 10%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지방정부에 주어진 상당한 자치권과 자율성은 다양한 정책적 실험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중앙으로의 승진 가능성은 정책을 추진하는 지방간부들에겐 상당한 인센티브로 작용했습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자율과 경쟁은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습니다.
어떤 정부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게 정책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다만 과거 중국은 절대 빈곤에서 탈출하는 게 더욱 시급했기에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에 집중했다면, 시진핑 시대 이후 중국은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더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의 중산층 비율은 50% 안팎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0년에 3%였던 점에 비춰 보면 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 성장의 효과는 상당히 컸습니다. 다만, 탕핑족이라고 하죠. 오늘날 중국의 MZ세대는 “문화혁명”이나 천안문의 기백이 아니라 드러누워 살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중산층은 1971년엔 61%에 달했지만 2021년엔 50%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어느 쪽이든 중산층 재건을 위한 분배 정책이 시급합니다.
게다가 중국은 적정 출산율은 2.1명이지만 현재 1.3명에 그치는 반면에 고령층 인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미 “고령화사회(2000년)”를 넘어 “고령사회(2021년)”로 진입했습니다. 2021년 기준 생산연령 인구가 70%에 못 미치며, 제대로 부유해지기도 전에 사회가 늙어가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중국은 성장과 분배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마오적 열정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도 마오의 상징자산은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공장이자 시장입니다. 인구수만 14억 명이며 한국과는 경제적으로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위기만큼이나 중국에서의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이번 주 일요일 저녁 8시입니다. 중국 전문가로서 < 중국 딜레마>의 저자인 박민희 한겨레신문 기자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선데이 시소 신청은 이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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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소사이어티 시즌 2 안내
또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우리만의 지적 여행 ‘시에라 소사이어티’ 시즌 2가 10월부터 시작합니다.
델타 월딩이 무료로 제공되는 뉴스레터라면 시에라 소사이어티는 건강한 담론 생태계를 꿈꾸는 비밀요원님을 위해 제공하는 프리미엄 콘텐츠입니다. 지속가능한 델타 월딩을 함께 만들어 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시즌2에선 국제정세 캐취업, 지속가능한 투자와 정책, 정치고전을 통해 재해석하는 현실정치, 빅테크와 미국정치 깊이 읽기 등의 주제로 네 개의 베이스캠프를 준비했으며 거주 지역과 시간대에 구애 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온・오프(서울시청 인근) 동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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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루트파인딩>
- 현직 기자와 이코노미스트를 함께 읽으며 국제정세 발 빠르게 캐취하기
- 문재연 한국일보 기자
- 10/29, 11/26, 12/25, 1/29
- 네 번째 토요일・일요일 저녁 7~10시
- 연휴 등으로 12월・1월 일정 조정 가능성 있음.
<♻️지속가능성>
- 투자자의 눈으로 고민하는 지속가능한 정책
- 박민경 신영자산운용 주식운용역
- 11/3, 12/1, 1/5, 2/2
- 첫 번째 목요일 저녁 7시 30분~10시 30분
<📔좋은 정치고전으로 바라보는 현재와 미래>
- 플라톤의 <국가>를 완독하며 현실정치를 재해석합니다.
- 최하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원・국회의원실 보좌진
- 11/5, 11/19, 12/3, 12/17, 12/31, 1/14, 1/28, 2/11
- 격주 토요일 저녁 9시~10시 30분
- 오프 장소는 서울 및 전국구로 순환할 계획
<🗺세계지도 다시 그리기>
- 빅테크, 미국정치 그리고 민주주의
- 홍윤희 무의 이사장・카카오임팩트 펠로우
- 11/6, 12/4, 1/8, 2/5
- 첫 번째 일요일 저녁 7~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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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권을 구매하면 시에라 소사이어티가 기획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합니다. 9월 말부터 접수를 받을 예정이니 2022 가을/겨울 일정을 미리 확인 후 캘린더에 등록해 주세요~
시에라 소사이어티는 지식이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를 꿈꿉니다. 시에라 소사이어티를 통해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경험
- 또다른 나를 만끽하는 경험
을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시에라 소사이어티 시즌 1 후기는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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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 열전>
- 일본, 조선(북한), 중국엔 한국과의 미래가 없는 걸까?
PART1. 🇯🇵 일본의 유산과 덫
- 아베 전 총리는 왜 전 세계에서 중요한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가?
- 8/21(일) 저녁 8시, 줌
-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PART2. 🇰🇵 남북관계의 모든 것
- 조선(북한), 도대체 뭘 원하나?
- 9/4(일) 저녁 8시, 줌
- 서호 전 통일부 차관・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
PART3. 🇨🇳 중국 이후의 중국
- 중국 MZ세대는 일당독재를 진심으로 지지하나?
- 9/18(일) 저녁 8시, 줌
- 박민희 한겨레신문 기자・<중국 딜레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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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시소 2022 가을/겨울
- 일요일 저녁 8시, 줌
10/2,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책들
11/13, 🪖전작권 전환과 한미동맹
11/27, 🎞정치외교안보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 황동미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원
- 스페셜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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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월딩 Blue Hour 5th. 파주 제3땅굴
- Top Secret 현장 전문가와 함께 천혜 자연의 보고 민통선 구석구석을 둘러 봅니다.
- 제3땅굴,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남북출입사무소
- 2022년 9월 24일(토) 오전 10시~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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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월딩 치킨 번개!
- 델타 월딩과 서호 전 통일부 차관이 치킨을 쏩니다.
- 남북관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요~
- 2022년 10월 7일(금)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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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월딩 Blue Hour 6th. 삼각산 왕의 길
-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왕의 길을 따라갑니다.
- 북한산성 행궁터를 돌아보며 왕놀이를 합니다.
- 2022년 10월 23일(일) 오전 9시~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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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소사이어티 구성
- 야외 탐험 → 🌠블루아워
- 창의성 계발 → 🪄델타 월딩 마법학교
- 요즘 핫이슈 빠르게 습득 → 👋 선데이 시소
- 특정 주제 전문가와의 주기적인 만남 → 🏕베이스캠프
- 시에라 소사이어티 통합 OT, 반상회, 뒷풀이 등 → 🔥캠프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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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ta.worlding@gmail.com
우리은행 126-549892-02-001 (후원)
네 번째 세계를 향해! 델타 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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